[박기철의 플레이볼] 커미셔너 자리와 역할
야구에서 대통령보다 더한 권력을 누린다는 커미셔너도 비슷하다. 역대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가운데 별 비난을 받지 않는 인물은 바틀렛 지아매티가 유일하다. 다른 커미셔너들은 여러 이유로 구단주나 선수 또는 언론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초대 커미셔너인 랜디스 판사는 도박 사건으로 얼룩진 야구계를 정화시켰다는 칭찬과 함께 죄가 없는 선수에게도 억울한 과잉 징계를 내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선수들의 커미셔너를 자부했던 해피 챈들러나 장군 출신으로 커미셔너 자리에 올랐던 윌리엄 에커트는 구단주들로부터는 무능한 인물로 낙인이 찍혔다. 기자 출신으로 베이브 루스의 대필 작가였던 포드 프릭은 1961년 로저 매리스가 루스의 한 시즌 홈런 기록을 깨뜨리자 루스는 154경기에서 세운 기록이고, 매리스는 162경기에서 냈다며 정식 기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억지를 부렸다.
자기 리그에 유리한 커미셔너를 뽑으려는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의 극렬한 싸움 덕분에 어부지리로 커미셔너가 된 보위 쿤 변호사는 16년 동안 장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다저스의 오말리 등 거물 구단주의 비위를 맞추기에만 급급했다는 비난을 샀다. 스포츠 마케팅의 귀재란 칭송을 받으며 취임한 피터 위베로스는 거액의 방송중계권 계약을 따내기는 했다. 하지만 FA선수에 대해 담합을 하도록 구단주들을 부추겼고, 그 결과 구단은 2억 8000만달러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페이 빈센트는 리그 회장이 할 일까지 본인이 챙기고 리그 조정, 노사 협상 등에서 구단주들을 무시하고 개입하려다 쫓겨났다. 구단주 출신으로는 최초로 커미셔너가 된 지금의 버드 세릭은 뉴욕 양키스와 같은 부자 구단의 수익을 자신의 구단인 밀워키 브루어스처럼 가난한 구단으로 돌리는 데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아매티가 비난을 받지 않는 이유는 재임 기간이 154일에 불과하고 그나마 재임 중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많은 커미셔너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비난을 사고는 있지만 한국 야구의 기준으로 보면 모두 유능하고 헌신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타의로 자리를 물러난 경우는 있지만 취임할 때는 인생의 마지막 직업이라는 각오로 자리에 올랐다. 또 1년에 수십 경기 이상을 야구장, 그것도 관중석에서 지켜보며 현안을 속속들이 챙긴다. 요즘 공석이된 한국야구 커미셔너 자리에 대해 여러 말이 오간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야구에 모든 것을 걸고 ‘올인’할 수 있느냐가 아닐까.
‘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