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모시조개/심재억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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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11-09 00:00
입력 2005-11-09 00:00
햇살에도 설핏 냉기가 서린 11월. 다리를 동동 걷어붙이고 망망한 개펄 한 쪽에서 호미질을 해댑니다. 그러다 보면 까락까락 호미 끝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모시조개입니다. 갯바람 시리던 등에 진득 땀이 밸 무렵이면 바가지에 개흙범벅 조개가 제법 모입니다. 아버지 술국 거리가 마땅찮은 어머니는 한사코 제 등을 떠미셨습니다.“후딱 가서 조개 몇마리 캐오너라.”

놀기 바빠 불퉁하게 주둥이도 내밀어 보지만 ‘홍시 하나’의 꾐에 이내 넘어가고 맙니다. 연방 호미 끝에 조개가 걸려 올라와 바가지 반쯤 채우기는 일도 아닙니다. 개펄 가득 진을 친 도요새의 빨간 다리가 시려도 보이지만 마냥 그걸 쳐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해풍 앞세운 밀물이 금방 이 너른 개펄을 뒤덮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녁 밥상에 붉은 고추 숭숭 썰어 넣은 뽀얀 조갯국이 오릅니다.“고거 참 시원하다.”시며 훌훌 맵싸한 조갯국을 드시는 아버지의 얼굴에 흡족한 홍조가 돌고, 낮 짧은 늦가을 밤은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무교동 조개탕집 앞을 지나다가 문득, 모시조개 등속 시린 개펄에서 사는 하찮은 미물들이 그리워졌습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5-11-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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