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영국 런던 칼링브릭스톤아카데미에서 태극기가 휘날렸다. 올림픽으로 치면 금메달을 따내고, 월드컵으로 치면 4강 신화를 이룬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종목은 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비보잉. 대회는 ‘UK비보이챔피언십2005’. 이번 주말 독일에서 열리는 ‘배틀 오브 더 이어’와 더불어 춤꾼들 사이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회다.
비보잉은 디제잉, 그래피티, 래핑과 함께 힙합 문화를 이루는 브레이크댄싱을 일컫는 말. 비보잉을 하는 남자를 비보이, 여자는 비걸로 부른다.
한국을 대표하는 언더그라운드 춤꾼(비보이)들이 결집한 ‘프로젝트 솔’이 이 대회 단체전(크루) 부문에서 다른 나라의 거센 도전을 차례로 꺾고 1위를 차지해,2002년 첫 출전 이후 3회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뤘다.
‘프로젝트 솔’은 신규상(겜블러) 이재욱 김홍열(드리프터즈) 김효근 조태원 유현(리버스) 신영석 조성국(라스트 포 원) 등 20대 초반 열혈 비보이 4개팀으로 구성된 연합팀이다. 한국 춤꾼들의 동작이 이어질 때마다 대회장을 찾은 수천 명의 외국 관객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코리아를 연호하며 함께 어깨를 들썩였다. 멤버 개개인을 상세히 알고 있는 팬들도 있을 정도다. 비단 이번 대회뿐만 아니다. 한국 비보이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춤 솜씨 때문에 2002년 아셈이 열렸던 덴마크에 초청받아 공연을 벌이고 각종 대기업 해외 이벤트나 한국 홍보 행사에 나서 ‘젊은 한국’을 알리는 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나라에서 전해진 문화지만, 우리가 정복했어요. 해외에서 비보잉하면 한국을 최고로 쳐줍니다.”라고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꿈결 같은 열전을 뒤로 한 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국내는 너무나 조용하다.2000년 즈음 비보잉 붐이 일어났지만, 아직 마니아 문화로 치부되며 색안경을 낀 시선도 많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시작했던 춤은 이제 생활이자, 인생”이라면서 “열정이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라고 이들은 한꺼번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조태원은 “부모님 세대에도 통기타나 장발 등 그때 문화가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비보잉을 나쁘게만 보지 말았으면 해요. 우리들이 흘린 땀은 건강한 땀이거든요. 물론 이해시키는 것은 우리 몫이자 의무지요.”라고 말했다. 조성국은 “나이 먹고 나서도 춤을 출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라면서 “외국에는 40세가 돼도 비보잉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도 30,40대가 되더라도 열정을 이어가겠습니다.”라고 자신했다.
방송 등으로 진출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김효근은 “방송에 나가면 우리 스스로 변질되고 황당한 요구도 많이 받아요. 우리는 언더그라운드를 지키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들의 스케줄을 관리해주고 있는 재미교포 신건철도 “한국의 비보이들이 좋아서 한국을 찾아왔습니다.”라면서 “이들이 세계에서 보여주는 열정과 실력을 보면 그동안 외국 사회에서 겪었던 차별이라는 고통도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라고 한마디 거든다. 비보이에게는 군대도 큰 고민이다. 입대로 인해 팀이 해체되는 일은 다반사. 이들은 “고전 무용이든, 현대 무용이든 군대가 면제되는 제도가 있어요.”라면서 “비보잉이 당당한 예술 장르이자 양지에 나선 문화로 자리잡는다면 언젠가 좋은 날도 있지 않겠어요?”라고 아쉬워했다. 큰 대회를 마쳤지만, 여전히 바쁘다. 겜블러의 신규상은 ‘배틀 오브 더 이어´ 출전을 위해 독일에 남았고, 김홍열 등은 비보잉 배틀을 소재로 한 비디오게임의 캐릭터로 나선다. 영국 대회는 올해까지 초청팀 자격으로 출전했지만, 내년부터는 국내 예선도 열릴 예정이다.‘프로젝트 솔’도 각 팀으로 돌아가 내년부터는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
음악전문채널 MTV는 다음달 24일 오후 7시 8부작 시리즈 ‘브레이크 비트’의 마지막 편에서 한국 비보이의 열정적인 영국 무대와 시청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2005-10-2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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