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님 강의 맞아
유지혜 기자
수정 2005-10-19 07:02
입력 2005-10-19 00:00
“처녀라는 명성을 믿고 같이 잤는데 알고 보니 처녀가 아니었을 경우, 그 명성을 믿은 사람을 보호하려는 것이 상표법”(법학 수업에서 B교수, 상표법을 설명하며)
서울대 여성운동·연구모임인 ‘관악여성모임연대’가 최근 펴낸 50쪽 분량의 소책자 ‘으랏차차!강의실 뒤집기’에 이런 강의 중 언어 성폭력 사례가 고스란히 담겼다.
이 책자는 학생들이 지난 학기 설문조사에서 밝힌 생생한 체험담들로 구성됐다.
일부 교수들의 강의 중 언어폭력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여성을 성 구매의 대상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남성우월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책자에서 한 여학생은 “논증형식에 관한 논리수업 연습문제에 ‘가슴이 작은 여자는 브래지어가 필요없다.’는 대화가 수록되어 있었다.”고 전했다.“외모도 수준 이상인데 한번 발표해 보라고 했다.”“여성이 표준어에 빨리 적응하는 이유는 신분상승을 위해 시집을 잘 가려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여성의 신체와 외모를 이용해 성적인 농담을 던지거나 여성을 결혼과 출산만을 위한 존재로 폄하하는 사례도 여럿 포함됐다.“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이라고 말해 군대 경력을 대단한 것처럼 치켜세우면서 듣는 사람을 남학생으로 한정하기도 했다.“여자애들에게 지지 않도록 분발하라.”“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조심해야 한다.” 는 등 남성우월적인 발언을 노골적으로 내뱉는 교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교수는 학점을 주는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발언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공과대 여학생은 “전공수업을 듣는 여학생이 얼마 되지 않으니 익명으로 문제제기를 해도 금방 들통날 것이고 그렇게 교수에게 한번 찍히면 살기 힘들지 않으냐.”고 푸념했다.
책자발간을 계기로 여성모임연대 안에 새로 만들어진 강의실 환경 개선추진기구 ‘강의실 뒤집기’의 관계자는 “행위로서의 언어는 명백한 폭력이 될 수 있지만 교수와 학생이라는 특수관계 때문에 사실상 반론이 힘든 실정”이라면서 “학생이 심한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명백한 성희롱을 처벌할 수 있도록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성희롱·성폭력상담소 하혜숙 전문위원은 “성희롱과 성폭력의 정의가 모호하고 주관적인 데다 당시 정황을 따져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수와 학생이 무조건 대결구도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하 위원은 “교수와 학생간 소통의 오해를 막기 위해 교수들을 상대로 연 1회 이상 관련 교육을 하는 한편 문제의 소지가 있는 수업자료 등에 대해 사전에 학생들과 의견을 나누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2005-10-1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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