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여성들 “인권이 뭔가요
나길회 기자
수정 2005-08-10 08:06
입력 2005-08-10 00:00
●북한에선 집에서 노는 남편 ‘멍멍이´로 불려
지난 2003년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온 이순영(가명·40)씨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편의 손찌검은 없지만 남한에 정착한 이후 살림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고 남대문 시장, 식당에서 일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여기에 남편이 최근 사고를 당해 병수발까지 해야 해 몸과 마음이 고달프기 그지없다. 이씨는 “아내가 벌어다 주고 건달처럼 사는 남성탈북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씨는 “여성은 남성보다 못한(열등한)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낯선 남쪽에서 남편의 억압을 받으며 생계를 꾸려가는 탈북여성들의 고통은 극심하다. 북한이 남한에 비해 훨씬 더 가부장적인 문화가 만연해 있는 탓이다. 여기에 남성들에게는 ‘가장’의 책임의식조차도 없어 여성이 집안일은 물론 생계까지 책임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북한에서는 특히 식량난이 시작된 1997년부터는 아내는 노점에서 장사를 하고 남편은 집에서 노는 경우가 많다. 집안일은 여전히 여성 몫이다. 그래서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 남편의 안부를 물을 때면 “너희 집 멍멍이 잘 있니?”라고 말할 정도다.
●남성 취업하면 지원금 끊겨 여성이 생계 맡아
이러한 탈북 여성의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은 탈북 후 남한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정착을 위해 부부가 함께 열심히 노력하는 경우도 많지만 북에서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정 폭력의 경우 북한에서는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탈북자 장정실(가명·40)씨는 “이런 일은 ‘집안일’이라면서 국가가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남편에게 맞더라도 신고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다.”고 전했다. 장씨는 “북에서도 결혼을 했었는데 당시 군인이었던 남편한테 각목으로 머리를 맞은 적이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잘못해서 맞았을 것”이라고 말해 인권에 대한 개념이 없음을 보여준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은 남한보다 가부장적 문화가 훨씬 강하다.”면서 “최근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기성세대는 북에 있을 때나 이곳에 와서나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같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여성에게 생계를 맡기는 것은 남자들이 취업을 하면 지원금이 나오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탈북자에 ‘남녀동등´ 인권교육 필요
해마다 여성 탈북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2002년부터는 여성 귀순자가 남성을 앞질러 현재는 여성의 수가 더 많다. 그럼에도 탈북 여성의 인권 문제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서보혁 북한전문위원은 “일단 탈북자들에게 남녀가 동등하다는 인권 의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면서 “우선 귀순자 사회정착 지원 기관인 하나원에 인권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할 것같다.”고 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2005-08-1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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