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장편소설 ‘개’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이순녀 기자
수정 2005-07-15 07:58
입력 2005-07-15 00:00

개의 눈을 통해 본 인간사

뜻밖이다.‘칼의 노래’‘현의 노래’에서 역사속에 박제된 인물들에게 부드러운 살과 더운 피를 부여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으로 되살려냈던 선 굵은 작가 김훈(57)이 말랑말랑한 성장소설이라니. 그것도 사람이 아닌 ‘개’가 주인공인 우화소설이다.‘현의 노래’이후 1년여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개’(푸른숲)는 작가가 자전거를 타고 강토 곳곳을 돌아다니다 마주친 주인없는 개들에게서 모티프를 얻었다. 더 정확히는 굳은 살이 박힌 개의 발바닥이다. 작가는 그들의 새까맣게 굳은 살에서 ‘제 몸의 무게를 이끌고 이 세상을 싸돌아다닌 만큼의 고통과 기쁨과 꿈이 축적되어 있음’을 들여다봤고,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 인간사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작품 의도를 밝혔다.

진돗개 숫놈인 보리는 수몰을 앞둔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보리는 다섯형제 틈바구니에서 엄마 젖을 차지하기 위한 생존의 본능을 체득하고, 앞다리가 부러진 맏형의 죽음을 통해 존재의 비애를 직감한다. 하지만 어린 보리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은 아직 찬란한 빛이 가득한 경이로움 그 자체다.

마을이 물에 잠긴 뒤 주인 할머니의 아들을 따라 바닷가 마을로 옮긴 보리는 생의 이면들과 하나씩 마주친다. 짝사랑하는 암캐 흰둥이를 그저 먼발치서 바라만 보고, 자신보다 몸집이 크고 사나운 ‘악발이’와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

작가가 품고 있는 인간에 대한 따듯한 연민의 시선은 곳곳에 아름다운 장면들을 숨겨두고 있다. 고깃배에 몰래 올라 탄 보리가 혼찌검 대신 주인의 밥을 나눠먹는 장면, 주인집 딸 영희가 다니는 학교의 정다운 풍경, 보리가 죽은 주인의 정을 잊지 못해 무덤에 코를 박는 대목 등은 애잔한 슬픔을 자아낸다.98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5-07-15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