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정치가 먼저냐, 경제가 먼저냐/육철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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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7-07 07:42
입력 2005-07-07 00:00
‘CEO주가’라는 게 있다. 최고경영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기업의 주식값이 달라진다는 건데, 현실을 보면 대개 들어맞는다. 기업들이 경영능력과 명망을 갖춘, 특히 시장에서 인정받는 경영인을 CEO로 모시려고 애쓰는 데는 그래서 다 이유가 있는 거다. 기업의 가치를 좌우하는 게 CEO라면 나라의 가치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은 당연히 대통령이다. 정치나 행정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주체로서의 국가도 대통령 의존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행 총재의 한마디에 1조원이 왔다갔다 하는 게 경제고 시장이다. 하물며 대통령은 그 존재나 언행만으로도 수조∼수십조원이 움직인다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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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철수 논설위원
육철수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이 올해는 경제에 전념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 불과 몇달 전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연말과 연초에 걸쳐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경제”라며 “경제회생에 주력하겠다.”고 누차 강조했다. 연두기자회견에서도 이런 기조는 이어졌고 국회연설에서도 연설문 25장 가운데 17장을 경제분야에 할애했을 정도로 확고한 의지를 다졌다. 그런데도 경제사정은 6개월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수출·내수·투자의 부진, 부동산 가격 폭등 등 성한 곳이라고는 거의 없을 정도로 경제는 내상이 크다.

이럴 때 한국경제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할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상·하반기에 한 차례씩 열리는 경제민생점검회의도 국무총리에게 넘겼다. 총리가 주재한다고 회의의 질이 떨어진다고 속단할 순 없다. 그러나 국정전반을 총리에게 맡겨 책임있게 운영하라는 뜻이라는 청와대의 해명에는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경제를 챙기면 국정의 우선순위가 뚜렷해지고 시장에서도 다른 무게와 메시지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꼭 필요한 시기에 발을 빼는 모습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노 대통령은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항간에는 대통령이 경제보다는 정치에 더 관심을 쏟으려는 수순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연정(聯政) 구상에 이어 정치를 정상으로 돌려놓겠다며 느닷없이 권력구조와 정치풍토 개선 문제를 들고나와 의문이 꼬리를 문다. 대통령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서신에서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며 새 화두를 던졌다. 의제가 워낙 메가톤급이다 보니 못 들은 체하기도 그렇고, 그냥 지나치기도 뭐하다. 가뜩이나 시끄럽고 말 많은 정계·언론계·학계에 진지하게, 건설적으로 논의해 보라 하나 구워 먹든 삶아 먹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해보라는 소리로 들린다.

노 대통령은 어제 또 띄운 글에서 “길게 보아 정치가 잘못된 나라가 경제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며 “경제가 어려운데 정치 얘기를 한다고 탓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논리”라고 지적했다. 참으로 답답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밑도 끝도 없는 논쟁 같아서다. 대통령의 견해가 틀린 게 아니라 국민이 당장 경제와 정치 중 어디에 관심이 있는가를 알아달라는 것이고, 지금해야 할 일과 시간을 갖고 천천히 해야 할 일을 가려달라는 것인데, 단순논리라고 나무라면 할 말이 없어진다. 권력구조나 정치풍토는 먹고 사는 문제하고는 아직은 거리가 있는데 이 문제로 또 얼마나 세월을 죽여야 할지 걱정이다.



경제는 대통령의 성적표나 다름없다.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임중 르윈스키 스캔들 등으로 비난받았으나 미국민은 직무수행 능력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관대하게 넘어갔다. 우리와 문화적 차이가 있긴 해도 따지고 보면 당시 미국경제가 호황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먼 장래를 내다보고 정치변화를 주도하는 것도 깊은 뜻이 있겠으나 지금 더 화급한 문제는 경제다. 경제가 풀려야 정치도 잘 된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05-07-0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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