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닭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수정 2005-06-07 00:00
입력 2005-06-07 00:00
서울 관악구 신림동 장세훈(30·회사원)씨는 닭고기에 입도 대지 않는다. 비슷한 ‘과’인 오리고기도 마찬가지다. 혐오식품도 아닌 바에야 못 먹을 뚜렷한 까닭이 없건만 “그냥 싫어서”라는 게 그가 밝히는 이유다.
그러나 시골집 하면 떠오르는 풍경 속에는 마당을 거니는 닭 몇 마리쯤은 들어가기 마련이듯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대개 닭고기 요리를 좋아한다. 전국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닭고기는 170만∼180만마리이며, 서울에서만 60만마리 정도라고 축산업계는 말한다. 삼복 무렵에는 전국을 통틀어 하루 220여만마리가 더위를 식히는 데 희생(?)된다고 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닭 열풍은 뜨겁기만 하다.
●서민의 친구, 닭짱이 돼라
닭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닭사모’(www.daksamo.net)는 2002년 3월 첫 발을 떼 현재 전국에 회원 1480여명을 거느렸다. 닭 열풍을 말해 주는 듯 한때 3000여명까지 불어났다. 그러나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들어올 수는 없다.’는 모토를 내걸었다. 이에 따라 가입 자격을 까다롭게 만들어 온라인을 통해 호기심만으로 참가하는 ‘고무줄 회원’을 정리해 나갔다.
동호회 대표의 직함부터가 다르다.‘닭짱’으로 불리는 이두호(29)씨는 “이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뒤 언젠가부터 건강식이 강조되면서 골목 골목에 닭집이 들어섰으며 일주일에 4∼5차례 닭고기를 즐기게 되면서 입맛에 맞는 닭집을 찾아나설 만큼 ‘닭고기 마니아’로 커갔다.
웹 디자이너로 일하던 2002년 어느 날 이씨는 고객과 닭고기 얘기를 나누다가 닭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날 수 있는 동호회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받았다. 사이트를 개설한 지 이틀 만에 1400여명이 모여드는 등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최근 각 분야에서 엄청나게 늘어난 동호회 가운데서도 온라인으로만 활동하는 게 대부분인 경우도 적잖다.
닭사모는 이런 회원에 대해서는 단연코 ‘노’(No)라고 외친다.
서울·경기, 부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라, 대전·충청과 해외지부를 따로 둔 닭사모는 사이트에 실은 정보를 철저하게 비공개로 한다.
일주일에 한 차례 갖는 정기회와 지역별 번개모임에 얼마나 착실히 참가하느냐를 따져 ‘고무줄 회원’을 가려내기 위해서다.
특히 닭 연구 모임인 ‘GCS’(Group Chicken Study)에서는 매주 목요일 20여명씩 모여 닭 요리·닭집 정보와 부위별 특징, 조리법, 양계업 동향 등에 대해 공부를 한다. 알고 먹자는 뜻에서다.GCS는 가입 5주 과정별 한 기수로 운영하며, 기수마다 과정이 끝나면 ‘책걸이’를 하듯 총결산하는 정기 모임을 갖는다.
이 회장은 “회원을 걸러내다 보니 참가자가 생각보다 자주 바뀌어 이러다 몇 년이 흘러도 남는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해 2월 GCS를 발족시켰다.”고 귀띔했다.
이 회장은 인터넷 시대에 걸맞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평가받아 한 중진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특명 ‘닭으로 사랑하라’
개그맨 김지환(30)씨는 “잠시 방송활동을 멈추고 신촌에 고추통닭 가게를 내 가입하게 됐다.”고 소개한 뒤 “인테리어 등에 대해 회원들이 의견을 보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20명으로 이뤄진 해외지부에서도 소식이 답지한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사는 이주영(26), 미국 미시건주 이스트랜싱에 사는 최윤미(14) 회원은 “매주 20∼30회 정도 사이트를 방문해 모국에서 들려오는 닭 얘기를 접한다.”고 근황을 전해 왔다.
닭사모는 모든 모임에서 단결을 꾀하기 위해 ‘닭 노래’를 부르며 운동선수들이 몸을 푸는 것처럼 ‘입’을 푼다. 닭 요리 찬송가인 셈이다.
노래는 두 종류다.‘다들 이불 개고 닭 먹어’는 보니 엠이 부른 팝송 ‘Rivers Of Babylon’을 개사했으며, 역시 번안곡인 동요 ‘우리 모두 다함께 손뼉을’을 ‘우리 모두 다함께 닭 먹어‘로 바꿔 부르고 있다.
그러나 모여서 먹기만 할 게 아니라 사회봉사에도 힘쓰자는 뜻으로 회원들이 인근 통닭집에서 가까이 사는 불우이웃에게 배달해 주는 활동도 세밑이나 명절 등 때마다 벌인다. 본인이나 받는 쪽이나 부담이 적어 참여하기 쉬운 게 장점이다.
닭사모는 그동안 쌓인 정보를 다듬어 곧 책으로 엮어낼 계획이다. 책에는 크게 4장으로 나눠 국가별 닭 문화, 분포, 종류, 부위별, 이용, 영양성분, 맛집 탐방, 독특한 양념 등 닭고기에 얽힌 비법도 담을 생각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2005-06-07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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