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운특파원 워싱턴저널] 북핵문제의 국가적 기회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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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6-04 10:18
입력 2005-06-04 00:00
미국 상원의 공화당 원내대표인 빌 프리스트 의원이 지난 1일(현지시간) 하버드 의대에서 “남한이 핵무기를 갖고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 중”이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모교인 하버드 의대에서 ‘바이오 테러’를 주제로 강연하던 프리스트 의원은 “바이오 테러의 위협이 크다면서 왜 의회는 핵 테러 예산만 편성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지금 남한에서는 사정거리가 1500마일에 이르는 미사일을 시험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그들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라고 답변했다고 하버드대 교내신문 ‘하버드 크림슨’이 보도했다. 이 신문은 “명백하게 북한을 남한으로 잘못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프리스트 의원측과 주미 한국대사관측에 코멘트를 요구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집권당의 상원 원내대표는 워싱턴 정가에서도 핵심 실세이며, 프리스트 의원은 차기 대통령 후보군에도 속한다.

물론 실수였겠지만 그만한 인물이 남·북한을 쉽게 헷갈리고 해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은 사우스(남)든 노스(북)든 ‘코리아는 핵 때문에 골치가 아픈 곳’이라는 인식이 깊이 심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미국의 주요 언론사로 접수되는 독자 투고 가운데 “한국은 오랜 동맹이고 미군이 피를 흘리며 지켜준 나라인데 왜 핵을 개발해서 미국을 괴롭히느냐.”는 힐난이 담긴 내용이 적지않게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북핵 문제 때문에 우리가 치러야 하는 국가적 기회비용이 너무도 크다는 생각이다. 한국의 정치와 정부 정책, 기업 활동과 금융시장, 언론 보도와 시민단체의 활동, 그리고 국제관계에서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북한과 북핵 문제가 어느 정도의 무게로 우리를 짓누르는가를 생각하면 새삼 놀라게 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휴가 때 오랜만에 만난 동창 2명과 골프장을 찾았다. 그날 혼자서 골프장에 나온 점잖은 풍모의 미국 신사가 함께 라운딩하기를 원했다. 한국에서 온 신문기자라고 소개하자 그 신사는 반색을 하며 “어떤 분야를 주로 취재하느냐.”고 다정하게 물었다.



별다른 생각없이 “북핵 문제 같은 좀 지루한 이슈를 다룬다.”라고 답변하자 그의 안색이 바뀌었다. 텍사스 출신인 그 신사는 “북핵 문제는 지루한 이슈가 아니라 무서운 이슈”라고 정색을 하며 되받았다. 그날 골프 스코어는 엉망이었던 것 같다.

dawn@seoul.co.kr
2005-06-0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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