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황후전 궁녀 창밖으로 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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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5-12 07:13
입력 2005-05-12 00:00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목격한 외국인의 증언록 전문이 11일 공개됐다. 명지대 LG연암문고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세계문학연구소 김려춘 교수가 최근 러시아 제국 외교고문서관에서 세르진 사바친의 명성 황후 시해 사건 목격기를 발견해 전달했다.”고 밝혔다.

사바친은 고종이 고용한 러시아인 건축기사로 1894년 8월부터 사건 당일까지 경복궁에 살았으며 사건 뒤 중국 산둥(山東)성으로 피신해 이 기록을 남겼다. 다음은 증언록 가운데 명성황후 시해 장면.“새벽 5시 궁궐 공격이 시작됐다. 북동문 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유창한 연설로 보아 사전 연습까지 해둔 것이 분명했다. 궁궐을 지키던 위병들은 사방으로 달아났다.



나는 황후전(건청궁)에 있는 두개의 문 앞을 지키는 5명의 일본인 보초병과 장교 한 사람을 봤다. 동시에 마당에는 훈련대 소대와 오동나무 문장이 들어 있는 일본 옷이나 양복을 입은 20∼25명가량의 일본인이 있었다. 일본인에 붙잡힌 내가 황후전 마당에 서 있을 때, 일본인들은 궁녀 10∼12명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끌어낸 뒤 창문 밖으로 던져 마당으로 떨어뜨렸다. 궁녀들 중 그 어느 한 사람도 소리를 지르지 않는 완전한 침묵 상태였다. 황후전 마당에 머문 15분의 마지막 순간 일본인 5명이 시뻘개진 얼굴로 사납게 외치면서 황후전 안으로 뛰어 들어가 어떤 궁녀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달려 나왔다. 일본인 한 명이 내게 황후의 거처를 물었다. 새벽 5시15분쯤 국왕이 유럽인들을 접견하던 전각 부근에 일본 병사 100∼150명과 장교 8∼10명이 있었다. 많은 일본군과 조선인 고관들이 그 곳에 있던 것으로 보아 국왕이 그 곳에 있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연합
2005-05-1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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