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잭 웨더포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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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4-02 11:51
입력 2005-04-02 00:00
“등 위에 올라탄 사람의 의사와 관계없이 가고 싶은 대로 질주하는 말의 눈에 나타난 표정을 생각해 보라.”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묻는 저자 잭 웨더포드의 질문에 대한 한 몽골 학생의 대답이다. 테무진은 너무도 유명한 칭기즈 칸의 본명. 아마도 칭기즈 칸의 생애를 이처럼 잘 보여주는 설명은 찾기 힘들 듯 하다.

꼼꼼한 답사와 고증을 거친 ‘칭기즈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정영목 옮김, 사계절 펴냄)가 번역돼 나왔다. 제목(원제 ‘칭기즈 칸과 근대세계 형성’)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서구의 시각에서 칭기즈 칸과 그 후손의 역사를 살펴본 책이다.

그러나 저자의 접근법은 ‘야만과 공포’를 강조하는 서구의 기존 접근법과 다르다. 이를테면 ‘내재적 접근법’에 가깝다. 번개 같은 기병으로 약탈과 방화만 일삼았던 잔혹한 몽골군이라는 표면적 인상 대신 어떻게 효율적으로 군대를 조직하고 사회를 유지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가 보기에 몽골군의 잔인함은 필요 이상으로 과장됐다. 몽골군은 다만 굴복시킨 적 가운데 쓸모있는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을 구분, 쓸모없는 사람을 죽였을 뿐이다. 쓸모없는 사람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권력, 돈, 지식을 가진 사람들, 바꿔 말해 지도층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반란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사람도 이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기록에는 이들의 호들갑과 공포, 동시에 자신들의 무능함과 나약함을 가리기 위한 변명과 책임회피가 가득할 뿐이다. 또 결정적으로 몽골은 쇠망했고 지금은 서구가 세계의 중심이다. 중국도, 유럽도, 인도도, 이슬람도, 그 어느 누구도 몽골을 좋게 말할 리 없다. 오죽했으면 영화 ‘반지의 제왕’의 우르크하이가 몽골군을 상징한다는 해석까지 나왔을까.

저자는 잔혹함보다는 칭기즈 칸이 부린 ‘통합의 마술’에 주목한다. 무기는 비밀리에 전해오던 몽골왕실의 기록 ‘몽골비사’와 수년간 직접 몽골을 둘러본 ‘현장답사’의 경험이다.

칭기즈 칸은 떠돌이 유목민에게 가장 중요한 혈연관계를 사회적 관계로까지 확장시킨다. 물론 이 관계가 혈연관계와 똑같을 수 없다. 여기에는 100% 계약의 개념이 개입한다. 칭기즈 칸은 대내적으로는 각종 차별을 철폐하고 거의 균등한 분배체계를 갖춘다. 대외적으로도 주변국들과 이런 관계를 철저히 지킨다. 항복하면 안전을 보장하지만 저항하면 처절하게 짓밟는다.

이 와중에도 지배층과 군인은 죽이되 나머지 피정복민은 양자 입적과 혼인 등의 방식으로 몽골에 동화시킨다. 자기네 왕에게 억압당하던 피정복민들에게 몽골이 제공하는 것은 평등한 분배체계의 혜택과 정치적 안정이었다. 이는 칭기즈 칸이 대법령을 제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침략과 야만’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칭기즈 칸 본인도 법에 따른다는, 일종의 법치주의 선언도 한다. 그 내용은 더 충격적이다. 출신에 따른 차별 금지, 완전한 종교의 자유 보장, 필수 공익사업자에 대한 면세 조치 등이 포함되어 있다. 칭기즈 칸의 폭발적인 힘은 분배체계의 개선을 통한 단합에서 나온 셈이다.



이런 서술을 쭉 읽다 보면 칭기즈 칸의 통치기술은 놀랍게도 로마제국의 그것과 비슷하다. 혈연관계의 확장이나 피정복민 융화정책, 교통과 통신의 중요성에 대한 깊은 이해 등. 여기에다 대제국 건설에 앞서 몽골의 지배권을 두고 20여년 동안 대립한 자무카와 칭기즈 칸의 얘기는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관계와 신기할 정도로 똑같다. 물론 이런 거창한 얘기만 담긴 것은 아니다. 저자의 전공이 부족민연구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몽골인에게 말총과 남자의 허리띠는 어떤 의미인지, 결투를 할 때 씨름하는 것과 칼을 꺼내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등에 대한 각종 설명이 양념처럼 곳곳에 배어 있다.1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05-04-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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