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냥꾼/보리스 S 지트코프 지음
수정 2005-02-19 08:24
입력 2005-02-19 00:00
●김영하가 옮긴 어린시절의 ‘금기’
번역을 맡은 이는 인기 소설가 김영하. 언젠가 미국의 대학도서관에서 이 동화를 처음 접하고는 무릎을 쳤단다.“밝고 화사한 이야기로 넘쳐나는 어린이 서가에서 고고하게 어둠을 뽐내며 꽂혀 있던 책”이라면서 “어린시절 먼지 쌓인 퀴퀴한 다락방에서의 은밀한 기쁨을 다시 맛보게 해주었다.”고 했다.
동화는 ‘금기’와 ‘금지’에 대한 아이들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이야기한다. 호기심 하나로 마음속에 자신만의 견고한 성(城)을 쌓아가는 동심의 한 자락을 생생히 묘파했다.
●“내 마음속 증기선 만지지 말라고요?”
주인공은 예닐곱살쯤 먹어 뵈는 꼬마 보류슈카.“아주 어렸을 때, 나는 할머니 댁에서 몇 주 동안 지낸 적이 있다.”로 운을 떼는 동화는 어쩌면 작가의 실제 기억일 것이다.
할머니댁에 들어서자마자 탁자 위 선반에 놓인 작은 증기선 모형에 보류슈카의 시선이 꽂힌다. 그 순간부터 주인공의 세상은 온통 증기선을 중심으로만 뱅뱅 돈다. 이제 어쩌나…. 마음은 송두리째 증기선에 쏠려 있는데, 할머니는 절대 만지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셨으니. 잠을 잘 때도, 빵을 먹을 때도 보류슈카의 생각은 증기선뿐.‘선실 안엔 소인들이 살고 있지 않을까?’‘(소인들은)성냥개비보다 작을 거야.’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책은 그 꼬리를 따라 한발한발 더 깊이 상상의 늪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끝까지 보류슈카와 할머니뿐이다. 신통한 것은, 그런데도 딴 생각할 겨를 없도록 긴장의 나사를 조여간다는 점이다. 보류슈카가 할머니 몰래 쌓아가는 상상의 성벽은 갈수록 높고 단단해진다. 소인들을 불러내겠다고 증기선 앞에 사탕 부스러기를 흩뿌려 놓더니, 또 다음날은 빵조각을 올려놓기도 한다. 소인은 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걸까. 사탕 부스러기도, 빵조각도 놓아두는 족족 없어지는데 말이다.
흑백 명암이 강조된 세밀한 펜그림이 아이의 심리를 말해 주는 동화에 안성맞춤이다. 갑판 위를 거니는 손마디만한 소인 선원 등 보류슈카의 상상을 채운 그림들에 어린 독자의 눈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의 호기심 아무도 못말려
어른들 방식의 빤한 결론으로 마침표를 찍지 않기에 동화는 한결 더 특별해진다. 보류슈카는 호기심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할머니 몰래 증기선에 손을 대고 만다. 어떻게 됐을까. 할머니의 벼락이 떨어졌을까. 거침없이 매끈한 김영하의 번역도 동화의 주제어를 온전히 전달하는 데 큰몫을 했다.6세 이상.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05-02-1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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