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278)-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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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2-02 08:07
입력 2005-02-02 00:00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일찍이 조선전기에 문신이자 학자인 정극인(丁克仁)은 ‘봄맞이 노래’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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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풍(和風)이 건뜻불어/녹수(綠水)를 건너오니

청향(淸香)은 술잔에 지고/낙홍(落紅)은 옷에 진다

술독이 비었거든 나에게 알리어라/어린아이에게 술집에 술이 있는가 없는가 물어

어른은 막대잡고 아이는 술을 메고…”

마치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처럼 술과 꽃과 달을 노래한 이퇴계. 이퇴계에게 도대체 어떤 ‘진실된 인연’이 이곳에서 있었던 것일까.

마침내 열차는 단양에서 멈췄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정확히 10시41분이었다. 나로서는 신비한 경험이었다. 역마다 서는 완행열차가 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마치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와 같은 느낌이었다. 많은 승객들이 나와 함께 우르르 기차에서 내렸다. 관광지인 단양을 들러 소백산의 철쭉제도 함께 즐기려는 상춘객이 대부분인 모양이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굽돌아 가는 강물 위를 스쳐오는 바람 속에는 살을 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러나 봄볕은 박살난 유리조각처럼 어디서나 흘러넘치고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역사를 나서자 한눈에 탁 트인 단양특유의 푸른 물과 붉은 산의 풍경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다가왔다. 개조하여 간이식당으로 만들어 놓은 객차너머로 지난 겨울동안 얼어붙었다가 녹아 흐르는 강물이 쪽빛으로 푸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역 앞 뜨락을 거닐었는데, 우연히 왼쪽 화단위에 자연석으로 만든 시비가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조남두(趙南斗)란 시인이 지은 ‘팔경가에서’란 시였다. 나는 천천히 그 시를 읽어 보았다.

“소매끝 도는 구름/두둥실 감기는 하늘

퇴계 선생 기침소리/유곡산란 바람소리

상중하 신선바위/어깨춤 물굽이여

구담봉 머리끝에 선학이 푸득인다.” 이퇴계는 9개월 동안 이곳 단양에 군수로 머무는 동안 빼어난 절경에 감탄하여 그 유명한 ‘단양팔경’을 지정한다. 시인 조남두는 바로 그러한 단양의 팔경을 노래하면서 이퇴계의 업적을 ‘기침소리’로 기리고 있음인 것이다. 시는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천년을 물속/도사린 큰 뜻이 우람쿠나.

어느 제 하늘갈련가/내 벗으로 예 머무는 거북

층층으로 줄이어 쌓인 옥순석병

훈풍결에/너풀너풀 풍류자락

날리며 송강을/대작할까

남한강 선경/감돌아 휘감기는

미기두향 옥가락아.”

팔짱을 끼고 시를 감상하던 나는 순간 마지막 연에서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남한강 선경/감돌아 휘감기는/미기두향 옥가락아”

미기(美妓)라면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기생’을 뜻하는 말. 그렇다면 그 기생의 이름이 바로 두향(杜香)이란 말이 아닌가.
2005-02-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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