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협정 문서 공개] 사망 1인당 1650弗 받아 30만원 지급
수정 2005-01-18 08:12
입력 2005-01-18 00:00
한일협정을 통해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무상 3억달러(당시 원화 948억여원) 중 우리 정부가 실제 개인보상에 사용한 금액은 불과 91억 8769만원(9.7%)에 불과했다.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협상과정에서 민간 피해자에 대한 보상 금액으로 3억 6400만달러을 요구했음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이는 당시 박정희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일본측에 피해자 보상 명목으로 청구권을 내세웠으면서도 협상 이후에는 실제 피해자에게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향후 무더기 개별 소송이 예상된다.
●신청기간 10개월, 부상·생존자 보상안해
1965년 ‘제7차 한일회담 청구권 및 경제협력위원회 제1차 회의 회의록’을 보면, 청구권 분쟁을 우려한 일본측 대표와 달리 우리 정부측 대표는 “각종 청구권이 덩어리로 해결된 만큼 이후 개인청구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각각 국내의 문제로 취급되어야 한다.”며 개인청구권 청구 가능성을 차단했다. 당시 우리 정부측의 제시 자료에 따르면 일제 피징용자는 노무자, 군인·군속을 합쳐 사망자 7만 7603명에 부상자는 2만 5000명, 생존자는 93만명이 넘어 모두 103만여명이다. 청구 금액은 사망자 1억 2800만 달러, 부상자 5000만 달러, 생존자 1억 8600만 달러 등 3억 6400만 달러로 계산됐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1975년부터 2년 동안 실제로 사망자 8552명에게 지급한 금액이 1인당 평균 30만원에 불과한 25억 6560만원에 불과했다. 당시 정부가 피해자 보상 청구를 지렛대로 삼아 청구권 자금을 따내려 했을 뿐 실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의 의지는 없었음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부상자와 생존자들이 피해 보상 청구를 했음에도 사망자 외에는 보상하지 않았음도 드러났다. 정부 관계자는 17일 “이 액수는 당시 군인 및 대간첩작전 중 사망한 향토예비군에게 지급하는 일시 급여금에 준하는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무상 3억달러 농림수산에 가장 많이 사용
당시 정부는 한일협정을 체결한 이듬해부터 보상의 법률적 근거를 단계적으로 밟았다.1966년 ‘청구권 자금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무상자금 중 민간보상의 근거를 마련했다. 그로부터 약 5년 뒤인 71년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을 제정, 노무자·군인·군속 등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용된 사람 중 사망자와 재산권 소지자에 한해서 71년 5월부터 72년 3월까지 10개월간 보상 신청 신고를 받았다.
74년에는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75년 7월부터 77년 6월까지 2년 동안 총 인명·재산 신고건수 10만 9540건 가운데 인명보상은 8552명에게 25억 6560만원, 재산보상은 7만 4967명에게 66억 2209만원을 각각 지급했다. 모두 8만 3519건에 대해 91억 8769만원을 보상했다. 무상공여 3억달러 중 나머지는 농림수산업 부문에 37.4%인 402억 6600만원이 쓰였고, 포철 건설에 16.2%인 174억 4200만원 등이 사용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05-01-1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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