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천국]‘미치고 싶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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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11-11 00:00
입력 2004-11-11 00:00
사랑이란 감정이 맘 먹은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도 모르는 순간 문득 찾아오고, 사랑이란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서로 닿을 수 없는 사이가 돼 버린 이들. 사랑으로 시작해 부부가 되는 보통의 연인들과 달리, 부부로 시작해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더이상 부부로 살아갈 수 없게 된 기막힌 사연만 놓고 보자면 영화 ‘미치고 싶을때(Head On·12일 개봉)’는 더없이 슬픈 멜로물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한 건 슬픈 사랑이야기를 누더기처럼 거친 삶의 현실 위에 툭 올려놓기 때문이다. 보통의 멜로영화처럼 사랑만이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공간이 아니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거친 삶과 사랑이 뒤엉키면서 살아 꿈틀거리는 이 영화만의 독특한 질감을 창조해냈다.

자유를 꿈꾸는 터키계 독일인 시벨(시벨 케킬리). 가족들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정신병원에서 만난 차히트(비롤 위넬)에게 결혼을 부탁한다.

결혼 뒤 약속대로 서로의 생활을 즐기며 룸메이트처럼 살아가지만, 죽음마저 두렵지 않을 정도로 망가져버린 삶의 궤도 위에서 둘은 처음으로 서로에게 안식을 얻으며 서서히 빠져든다.

하지만 운명은 둘의 행복을 원하지 않았다. 차히트는 시벨을 창녀라고 놀리던 남자를 실수로 죽인 뒤 감옥에 가고, 시벨은 터키로 떠난다. 삶의 끝에서 사랑은 둘에게 구원이 됐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 사랑 때문에 어긋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둘의 섹스신. 법적인 부부였을 때는 단 한번도 관계를 갖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난 뒤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시벨과 차히트가 갖는 섹스신은 삶의 슬픈 아이러니를 잘 드러낸다. 누구나 크든 작든 그런 아이러니를 품고 살아가기에 그들의 사랑은 울림이 크다.

아웃사이더들의 생생한 삶의 결을 그려넣은 화면 위에 사랑이란 감성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스토리 라인을 오밀조밀 짜넣은 감독의 연출솜씨도 놀랍다. 연대기를 훑는 듯한 스토리는 강한 흡입력을 갖고, 핸드헬드의 거친 영상은 감각적이면서도 진실되게 다가온다.



독일과 터키를 넘나드는 이국적인 풍경과, 터키의 전통음악부터 강렬한 록까지를 아우르는 음악도 인상적이다. 독일 출신의 파티 아킨 감독 작품. 올해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2004-11-1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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