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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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10-28 07:53
입력 2004-10-28 00:00
기술유출로 몸살을 앓은 기업들이 ‘외양간 고치기’에 나섰다. 한 마리는 잃었지만 ‘남은 소’라도 지켜 내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도둑’들의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뚫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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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팀 신설하고 데이터 저장장치 단속 강화

27일 업계에 따르면 하이닉스반도체는 다음달 1일부터 전 직원들의 PC에 DRM(디지털지적재산관리) 시스템을 도입한다.

DRM은 소프트웨어나 e메일, 문서뿐 아니라 음악, 영상, 출판물 등 각종 온라인 콘텐츠의 저작권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이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DRM을 적용하면 회사 내부에서 작성되는 문서나 회로 설계도 등이 암호화돼 외부에서는 읽을 수 없고 복사나 출력도 불가능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이닉스가 이처럼 ‘원천봉쇄’를 시도하게 된 것은 아무리 보안시스템을 잘 갖춰도 늘 새로운 수법에 의해 허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하이닉스는 업계에 기술유출 사고가 늘어나자 지난 4월 회사내에 보안팀을 신설한 이후 USB드라이브(휴대용 데이터 저장장치)나 CD-RW(데이터를 몇번이든 반복해 기록할 수 있는 CD)의 작동 및 자료의 다운로드를 불가능하도록 했다.

직원들이 보내는 e메일은 부서장에게 자동으로 전달된다. 또 서울 강남 사옥의 경우 각 층마다 보안검색대를 신설해 외부로 자료를 들고 나가는 것을 봉쇄했다.

하지만 최근 검찰에 구속된 모 반도체회사 연구원은 회사측의 보안프로그램을 비웃기라도 하듯 웨이퍼 검사장비 운용을 위한 핵심기술 프로그램 330개를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는 수법으로 빼돌렸다. 회사에서 개인 홈페이지는 미처 차단하지 못한 탓이다.

플로피디스켓이나 CD에 비해 저장용량이 크고 크기는 작아 최근 기술유출 수단으로 ‘각광’받는 USB에 대한 단속도 강화됐다. 대부분 기업들은 USB로 자료를 내려받을 수 없도록 했다. 전직 임원이 USB에 기술 자료를 담아 해외로 유출하려 했던 J사는 아예 USB를 컴퓨터에 꽂는 포트를 막아 버렸다.

출장시엔 봉인된 노트북 지급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있는 기흥사업장의 보안시스템도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USB나 CD 등 저장장치로 자료를 내려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로 나가는 e메일도 보안팀이 수시로 체크한다. 업무상 개인 외부메일을 사용해야 할 경우 부서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첨부파일 용량도 내부 메일은 10메가바이트, 외부 메일은 5메가바이트로 제한해 용량이 큰 설계도면은 메일로 보내지 못한다. 채팅이나 메신저가 가능한 사이트도 접속이 제한돼 있다. 때문에 PC에 저장된 자료를 외부로 반출하려면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들고 나갈 수밖에 없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반출입이 금지되는 노트북PC는 출장 등으로 필요할 때면 회사에서 봉인된 것을 지급한다. 출장을 떠나기 전까지는 노트북을 열어볼 수 없다.

자사 직원들이 퇴사하면서 휴대전화 관련 기술을 휴대용 소형 하드디스크에 담아 빼돌리려 했던 팬택앤큐리텔도 e메일 모니터링, 보안검색대 설치 등을 통해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 보안점검에서 지적된 사례는 사진을 찍어 회의때 공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안 시스템을 아무리 잘 갖춰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경쟁사와 유혹에 넘어가는 직원이 있는 한 업체와 ‘내부의 적’과의 쫓고 쫓기는 보안전쟁은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현대시스콤이 CDMA 원천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중국계 다국적 통신업체인 UT스타컴 한국법인에 매각한 것이나 기술컨설팅을 빌미로 기술을 빼 가는 것처럼 신종 수법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결국 ‘정신무장’과 함께 직원들이 떠나고 싶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등 ‘사람보안’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2004-10-2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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