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의 피카소/김원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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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4-23 00:00
입력 2004-04-23 00:00
소설가 김원일(62)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출간한 ‘김원일의 피카소’(이룸 펴냄)는 소설과 그림이 어우러진 평전이다.현대미술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대화가의 세계를 한국의 큰 작가가 술술 풀어간다.‘발견자’의 입장을 견지하려는 노력에 힘입어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피카소의 예술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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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피카소의 예술세계를 연대기적으로 따라간다.초기 청색시대를 그린 ‘푸른 색으로 본 슬픔과 가난’에서 출발한 피카소 여행은 자신감 넘치는 ‘분홍색시대’‘입체주의’‘초현실주의’ 등의 간이역을 거쳐 ‘영광의 말년-92세에 붓을 놓다’라는 종착역에 이르기까지 피카소의 예술과 사랑과 삶을 9개의 정밀화로 그려간다.시기별 화풍을 증거할 대표 작품을 손수 골라 각 장의 앞에 싣고 글을 풀어간다.그 사이에 피카소의 그림 232점을 비롯,동시대 작가 35명의 작품 67점의 도판을 가이드로 세운다.

책의 장점은 생생한 묘사.질료는 다르지만 ‘새것’을 잉태하는 고통은 같아서인지 작가는 단순하게 서술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양념처럼 섞거나 피카소의 감정에 철저히 몰입한다.피카소가 새로운 화풍으로 돌아설 때마다 활력과 영감을 준 새로운 여인과의 사랑,친구들과의 우정 등을 묘사하는 대목은 소설속 주인공처럼 살아 움직인다.또 그림에 대한 나름의 생각과 해석을 덧붙여 피카소뿐 아니라 현대미술로 가는 길을 잘 닦아준다.“피카소는 자신의 그림과 예술을 위해 자녀,여자,친구 등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습니다.위대한 성취 뒤에는 희생과 고통이 뒤따르는 것이 필연적인 것 같아요.”라는 해석도 덧붙인다.

작가가 피카소에게 빠지게 된 계기는 10대 후반에 만난 ‘어릿광대로 분장한 화가 살바도’.“조잡한 인쇄의 이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고 하염없이 바라보던” 소년은 “모딜리아니 연인의 긴 얼굴과 배우 제임스 딘의 옆모습 사진을 연필화로 베끼던 것처럼 이 그림도 열심히 모사(模寫) ”(289쪽)한 추억을 들려준다.“비록 돈이 덜 든다는 이유로 작가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으면 화가가 됐을 것”이라는 고백은 피카소 평전이 그의 ‘운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1년 6개월 동안 집필해 2600장을 탈고하기는 글쟁이 40년 만에 처음”이라며 “내가 쓴 게 아니라 쉴 짬 없이 정력적으로 그려댄 피카소의 영혼이 부단히 이끈 결과”라고 고백하게 만든 본질은 피카소의 실험정신.‘노을’‘겨울 골짜기’‘마당 깊은 집’ 등의 수작으로 한국 전쟁과 그것이 남긴 생채기를 소설의 화두로 삼아온 작가가 피카소의 메마르지 않는 창작정신에 관심이 간 것은 자연스럽다.“(…)92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쉴 틈 없이 자신의 세계를 새로 세우고 거푸 깨부수었던 부단한 변모와 실험정신,변화무쌍한 착상의 원천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피카소의 내면은 제가 풀고 싶었던 숙제였습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2004-04-23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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