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문맹자 운전 ‘학과고시 ’24번째 낙방 “고시보다 어려워”
수정 2004-03-25 00:00
입력 2004-03-25 00:00
“내사 마 이번에 안되면 때려 치아 불랍니더.”,“아이고 시험치기도 전에 재수없는 소리마소.이제까정 고생한게 얼만데….”
대부분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사이로 보이는 응시자들은 모두들 초조한 표정들이었다.10수 정도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고,20∼30수를 해도 합격하기가 어렵다는 문맹자 학과시험.
●문맹보증인 2명 필요… 속이는 얌체족도
대구 황경근기자
“1번 자·동·차 타·이·어의 역·할·은?”
마이크를 든 감독관이 시험문제를 또박또박 크게 읽어 내려가자 순간 43명의 응시자들은 귀를 쫑긋 세운 채 감독관의 입으로 일제히 시선이 모아졌다.
“아이고 이번에도 또 틀렸데이.못 들었심더.다시 한번 읽어 주이소.”
시간이 흐를수록 여기저기에서 긴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문맹자들이 이같은 학과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입증할 보증인 2명을 세워야만 한다.
문제를 일일이 읽어주기 때문에 일반시험보다 30분이 더 긴 8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이 때문에 자신을 문맹자라고 속이고 넉넉한 시간속에 여유있게 시험을 치르려는 얌체족도 더러 있다.대구운전면허시험장 우범용 시험계장은“점수가 너무 높게 나오거나 단 기간에 합격하는 응시자는 일단 의심을 한다.”면서“문맹자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합격을 취소시킨다.”고 말했다.이날 학과시험에는 응시자 43명중 겨우 3명만이 합격했고,점수도 2종 보통 커트라인에 겨우 턱걸이 한 60점과 62점.
●“늙어 힘 모자라 트럭행상 하려는데…”
24번째 응시했던 성모(56)씨도 고배를 마셨고,최연소 응시자인 이모(33)씨도 불합격했다.
“환장하겠구먼….문제를 듣고난 뒤에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니….”,“맞심더.차라리 한글을 배우는게 안 빠르겠는교?”,“그래도 우야는교.다시 한번 해 보입시더.”
탈락자들은 응서원서를 또 다시 접수하기 위해 4000원짜리 영수필증이 덕지덕지 붙은 원서를 들고 민원창구 앞으로 우르르 몰려갔다.대구운전면허시험장 신기범 장장은“귀로만 듣고 문제를 푸는 것은 80분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는 집중력이 필요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면서“자동차라도 한대 사서 행상이라도 해보겠다는 사람들인데 합격률이 낮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2004-03-25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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