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러·일전쟁/정인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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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2-11 00:00
입력 2004-02-11 00:00
그러니까 100년 전이다.2월10일 당시 일본 공사는 이틀 전 전투에서 러시아 함대를 격퇴한 여세를 몰아 러시아 공사에게 대한제국에서 손을 떼라고 최후 통첩을 보냈다.중국에 이어 러시아마저 몰아낸 일본은 그 이듬해 을사5적이라는 보신주의자들을 앞세워 을사보호조약을 맺었다.세상은 장지연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앞에 놓고 피울음을 쏟아 냈다.그리고 5년 뒤 대한제국은 일본에 합병됐다.1904년의 러·일전쟁은 민족 수난을 예고하는 전쟁이었다.

러·일전쟁이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는 것은 단순히 100주년이라는 산술적인 감각 때문이 아니다.1세기 전의 안타까운 역사가 어쩌면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세상을 화들짝 놀라게 한다.전쟁의 당사자였던 러시아는 14척의 일본 함정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자폭한 해군을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며 조국애를 고취하느라 야단법석이라고 한다.승자였던 일본이야 더 말해 무얼 하겠는가.그러나 그들의 전쟁터가 되었던 대한제국의 후예들은 그 전쟁을 잊은 것 같다.10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저 권력 싸움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릴 뿐이다.

러·일전쟁은 1904년 2월9일이 아니라 하루 앞선 2월8일에 발발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박종효 전 국립모스크바대 교수가 러시아 해군함대 문서보관소 자료를 근거로 서울신문에 ‘러·일전쟁 100주년’을 기고하면서 내놓은 견해다.러시아가 전쟁의 영웅적인 전투함으로 치켜세운 바랴크함이 일본과 첫 접전을 벌인 것은 바로 인천 앞바다에서 2월8일이었다는 것이다.그러니 하루 뒤인 9일 뤼순항에 정박 중이던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공격에 앞서 8일 전쟁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러·일전쟁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의 전쟁이었다.가르침을 깨치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통한의 시대를 살았던 대한제국 그 후예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참여정부는 두번째 개각을 단행했고 국회는 불법대선자금 등에 관한 청문회를 한다고 수선을 떨었다.세상은 둘로 나뉘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무슨 단체마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하나같이 4월 총선에서 권력을 움켜쥐려는 속셈들이다.100년 전을 요지경으로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다.이러다 정말 또 분에 못 이겨 목을 놓고 통곡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2004-02-11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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