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나무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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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6-06 00:00
입력 2003-06-06 00:00
산에 올라 나무들을 감상한다.성하(盛夏)를 앞두고 머리에 인 잎과 두 팔로 감싸안은 잎들이 갈수록 무거워 보인다.산비탈에 서있는 어느 놈은 힘이 부치는지 뿌리가 땅위로 뻗어 올랐다.먼길을 걸은 객의 피곤한 발등에 선 핏발처럼 억세 보인다.

가만히 보니 비탈의 나무가 새(鳥)와 얘기를 하고 있다.오호라,나무의 친구로 새 말고 또 뭐가 있을까.자연의 모든 것이 친구일 것 같다.해와 달은 잊지 않고 찾아주는 고마운 벗이겠지만,바람은 마음이 내킬 때만 한번씩 얼굴을 내민다.살랑거리다가도 심술이 나면 생채기를 내고 휙 사라져 버린다.나그네 친구인 새도 자기가 지칠 때면 찾아와 쉼터를 요구한다.가랑비 정도야 몰라도 보통의 비·눈도 달가운 친구는 아닌 듯싶다.



나무는 이 모든 친구들을 말 없이 맞아준다.뒤 이익을 따지지 않고 그저 친구로 받아준다.싫다고 자리를 피하는 법도 없다.비탈에 서있는 힘든 처지에도 베푸는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나무가 우리를 비웃지 않을까 두렵다.우정도,의리도 쓰면 뱉는 우리니까.

이건영 논설위원
2003-06-0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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