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心으로 살자” 나지막이 노래 / 김광규 시인 5년만의 시집 ‘처음 만나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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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5-14 00:00
입력 2003-05-14 00:00
“(…)처음 만나 악수를 하고/경어로 인사를 나누던 때를/기억하십니까/앞으로만 달려가면서/뒤돌아볼 줄 모른다면/구태여 인간일 필요가 없습니다/먹이를 향하여 시속 140㎞로 내닫는/표범이 훨씬 더 빠릅니다/(…)/처음 만나던 때로 우리는/가끔씩 되돌아가야 합니다.(시 ‘처음 만나던 때’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좀팽이처럼’‘크낙산의 마음’ 등의 시집에서 누구나 알기 쉬운 시어로 소시민의 삶을 예리하게 노래해온 김광규 시인이 5년만에 시집 ‘처음 만나던 때’(문학과지성사)를 내놓았다.

앞에서 인용한 표제시는 시인이 그 동안 일궈온 시심(詩心)을 압축하고 있다.처음 만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그에게 세상에 대해 자신을 낮추게 한 이치이자 시를 써오게 만든 힘이다.시인은 그 마음을 이번 시집에서 ‘우리를 낳아서 기른/어머니의 몸’으로 묘사하거나 모나미 볼펜과 샤프 펜슬,워드 프로세서 등에 밀린 케케묵은 필기도구 연필을 다시 사용하는 풍경(‘다시 연필로 쓰기’) 등으로 옮긴다.

그런 초심을 따라세상을 이야기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여태껏 보여준 시 세계처럼 여전히 나지막하다.시인의 시적 자아는 “혼자서 우뚝 솟아오르지 않는다/여럿이 함께 바람에 흔들릴 뿐”(‘우듬지’)인 500년 느티나무 처럼 더 잘났다고 고함치지도 않는다.나아가 켜켜이 쌓인 연륜을 바탕으로 “…이제 나의 허리띠를 남겨야 할/차례가 가까이 왔는가…”(‘끈’)라고 노래하며 생을 관조한다.이는 손주에게서 미래를 보는 여유(‘아기 세대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그의 노래는 신중하다.그래서 시인으로서의 자화상에 대해서,시를 쓰는 의미에 대해 끝없이 되묻고 있다.“…//아무런 부끄러움도 마음속에 간직하지 못한 채/언제 어디서나 마냥 떳떳하기만 한 사람이/과연 시를 쓸 수 있을지…/물어보아도 괜찮을까…”(‘조심스럽게’)라고.

이종수기자
2003-05-1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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