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틀 깬 조형서예 세계… 황석봉 ‘불립문자’전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3-02-11 00:00
입력 2003-02-11 00:00
중국 청대의 승려화가 석도가 그린 화훼와 묵죽은 “법이 없으면서도 법이 있는(無法中有法)“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을 듣는다.옛 법도를 체득하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자재로 그림을 그린 탓이다.“옛것을 빌려 현재를 연다(借古以開今)”는 그의 화론은 또한 후대의 회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오늘날 이른바 ‘조형서예’가 추구하는 세계는 바로 그런 석도의 예술의지와 통하는 것이 아닐까.

서예가 시몽(是夢) 황석봉(54)씨가 12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여는 ‘불립문자’전은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조형서예의 진경(眞境)에 들게 한다.

조형서예를 감상하면서 저것이 그림일까 글씨일까하는 의문을 갖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이미 글씨도 그림도 아니기 때문이다.화가 석도가 마음 속의 산수를 그렸듯이,조형서예 작가들은 마음 속의 문자를 그릴 뿐이다.조형서예는 문자나 말로써가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감흥을 전한다.그야말로 ‘불립문자의 예술’이다.

황씨가 지금과 같은 서예작업을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은 90년대 초반.그는 철저한 전통서예로 출발했지만 관심은 늘 전통의 틀 밖에 있었다.전통서예의 획일적인 법도는 그에게는 극복 대상이었다.“서예정신과 회화양식을 접목시키려는 나의 작업은 선(禪)의 여백과 도가적 기(氣)의 생성 변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여백은 무가 아니고 빈 마음의 충만이지요.선화(禪)의 근원을 공(空)에서 찾듯이 나의 예술의 뿌리도 ‘공의 여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황씨는 서예의 기본인 지필묵을 사용하지 않는다.캔버스와 오동나무 상자가 종이를 대신하며,나이프가 붓을 대신한다.그럼에도 황씨는 서예행위를 강조한다.문자의 의미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지만 한자의 상형에서 빌려온 점과 선,그리고 획의 조형성과 정신성은 진정 서예라는 얘기다.그는 자신의 예술행위를,점으로 모아지고 획으로 거듭나며 기운을 발산한다는 점에서 ‘기(氣)예술’이라고 부른다.

황씨는 서예의 예술화·세계화·대중화를 기치로 1991년 창립된 한국현대서예협회의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서예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 협회의 주된 목표였다.그렇다면 조형서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흑백의 세계에서 벗어나 회화적 색채를 도입하고,어려운 한문중심의 문장을 버렸다고 해서 서예와 일반의 거리가 좁혀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문제는 아직까지 조형서예의 개념조차 제대로 확립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형서예가 여전히 ‘서예’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전통서예의 문법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괜스레 혼란만 초래하는 이름을 거두고 ‘기 추상’회화 정도로 부르는 게 옳지 않을까.‘불립문자’전은 서예와 회화의 본령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자리다.(02)720-1524∼6.

김종면기자 jmkim@
2003-02-11 1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