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혁명/中사상가 리저허우.류짜이푸 대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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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2-07 00:00
입력 2003-02-07 00:00
현대 중국 사상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히는 리저허우(李澤厚·73)와 재미 망명 지식인 류짜이푸(劉再復·62)의 대담집 ‘고별혁명’(김태성 옮김,북로드 펴냄)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혁명이 아닌 개량의 21세기 중국’을 내세운 이 책은 최근 홍콩과 타이완에서 각각 출간돼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지만 중국에선 아직 출판되지 못한 ‘금서’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수를 지낸 리저허우는 89년 톈안먼 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돼 가택연금을 당했던 대표적인 ‘반체제’지식인.중국에선 부르주아 지식분자’로 경계 대상이 돼야 했지만,프랑스 국제철학아카데미에선 동양인으론 유일하게 원사(院士)로 활약해 라캉·데리다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다.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장,중국작가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한 류짜이푸는 톈안먼 사건 이후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을 떠난 망명 작가 겸 학자다.

이들은 대담 형식의 글을 통해 100년의 혁명기를 거친 중국 사회의 변화와 한계,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진단한다.류짜이푸는 현재중국이 처해 있는 시대는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두 도시 이야기’ 첫 머리에서 묘사한 유럽사회의 전환기를 방불케 한다고 말한다.“그 시대는 가장 훌륭한 시대이자 가장 고약한 시대였다.지혜의 시대이면서 가장 우매한 시대였고,신뢰의 시대이면서 회의의 시대였다.광명의 계절이면서 암흑의 계절이었고,희망의 봄인 동시에 절망의 겨울이었다.우리의 앞길엔 모든 것이 있었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없었다.” 류짜이푸에 따르면 지금 중국이 처한 상황 역시 이런 ‘이중(二重) 가능성’의 시대다.때문에 이 요령부득의 복잡하고 커다란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성’의 눈이 필요하다.

이같은 전제에서 두 석학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고별혁명’이다.도대체 무엇과 작별한다는 것인가.그것은 바로 이념으로 무장된 정치적 혁명을 말한다.인민을 정치로부터 해방시키고 경제대국과 문화대국을 건설하는 새로운 변혁,즉 혁명이 아니라 개량의 시대를 열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혁명이란 도구를 필요로 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혁명은 가장 가치있는 역사의 유산이자 선택이 아닐 수 없다.실제로 혁명은 의미있는 전환을 가져왔다.피로 점철된 프랑스혁명은 ‘공화정’이란 유산을 남겼고,볼셰비키 혁명과 국공내전에서의 공산당의 승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나라와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를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었다.때론 역사의 전면에서 때론 뒤안길에서 이뤄진 크고 작은 혁명들은 필연과 우연을 반복하며 인류 역사에 변화를 몰고 왔다.

그러나 저자들은 ‘혁명의 저울’에 의존해온 역사가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한다.나아가 21세기의 역사는 ‘개량의 저울’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혁명이 ‘부정’을 근본으로 한다면,개량의 근본은 ‘부정의 부정’이다.일체의 부정과 단절을 통해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게 혁명이라면,개량은 그런 단순하고 도식적인 부정을 다시 한번 부정하는 것이다.이는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이성의 회복을 의미한다.혁명은 역사의 지름길이 아니라는 게 이들의 결론이다.

이성의 힘을 강조하는 이들이지만 문학에서만큼은 매우 유연한 입장을 보여 눈길을 끈다.동서양을 넘나드는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한 학자라는 평을 듣는 리저허우는 “작가가 너무 똑똑해선 안된다.”고 말한다.지나치게 똑똑하면 뭣이든 명확하게 인식하고 생각이 주도면밀해져 문학 특유의 감성적이고 생기발랄한 것들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항상 멍한 상태에 있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에 빠졌고 술도 좋아했다.심지어 사형이 예정된 전날 밤에도 여전히 멍한 상태로 고별과 참회,새로운 생명의 문제를 생각했다.이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라야 자신의 온 생명을 문학에 쏟아붓고 진실한 체험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작가는 모름지기 민감하면서도 몽롱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류짜이푸 또한 “작가가 너무 이성적이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그는 러시아 비평가 미하일 바흐친 같은 사람은 너무 이성적이어서 훌륭한 작품을 남기지 못했고,1860년대를 대표하는 러시아 사상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도 이성에 치우쳐 ‘무엇을 할 것인가’란 소설에서조차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제시하는 서술방식을 택했다고 소개한다.



두 저자가 쏟아내는 청신한 담론들은 보다 보수적이거나 혹은 보다 급진적인 쪽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는다.그러나 중국 혁명 100년사를 가로지르며 당대의 사상과 문화,21세기 전망을 펼쳐놓는 이 책은 ‘혁명으로 이룩된 중국’을 이해하는 데 적잖은 도움을 준다.‘고별혁명’은 경제ㆍ경영서 전문출판사인 더난출판(대표 신경렬)이 인문ㆍ사회과학분야의 책을 본격적으로 내기 위해 만든 자회사 북로드에서 선보인 첫 책이다.2만원.

김종면기자 jmkim@
2003-02-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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