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시민 중심의 부패 통제체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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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2-09-09 00:00
입력 2002-09-09 00:00
정권을 유지하거나 획득하기 위해서는 각 정당이 ‘부패청산’에 관한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일반시민’들이 분명하게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부패를 줄이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사정기구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때로는 부패의 중심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 문제다.각종 게이트에 청와대·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금융감독원·국회의원 등의 고위 공직자가 연루된 것으로 특별검사의 수사결과 드러났으며,병역비리에는 기무사 등의 개입과 은폐의혹이 보도되고 있다.아울러 부패방지위원회는 조사권 등 권한의 부족으로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따라서 사정기구들의 위상과 기능에 관한 개혁 조치들이 다양하게 요구되고 있다.사정기관장의 인사청문회 실시,비리조사처의 신설 또는 부패방지위원회의 조사권 강화등의 개혁조치들이 이루어지면 사정기구들은 지금보다 진일보한 역할 수행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조치들이 쉽게 이루어질지 의문이며,설사 사정기구들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이 기구들이 기관의 이익보다 주인인 시민들의 이익을 더 우선시할 것인지,사정기관간 상호견제와 균형 장치가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그리고 또 이들 기구가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인력과 예산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패를 다 통제할 수는 없다.바로 이런 여러 가지 까닭으로 4500만 시민 모두가 상호 감시자가 되고 통제자가 되는 시민중심의 부패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시민중심 부패통제의 첫번째 길은 부패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는 사람들이 손해를 본다는 것을 인지하게 하고 이 손해를 스스로 구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이다.작금의 각종 게이트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보물선이나 인수후개발(A&D)사건 등과 같은주가조작,허위부실공시로 인해 상당수의 소액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으며,이로 인해 코스닥시장을 비롯한 증권시장의 신뢰성이 떨어져 유망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또한 부실대출 등과 같은 비리로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도산하게 되어 그 뒤처리를 위해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또 이 공적자금 투입과정의 비리로 인한 국민 부담이 막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해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고 인지하는 경우에도 집단소송제도와 같은 소액·다수의 피해를 효율적으로 구제해 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납세자인 시민이 직접 행정기관을 대신하여 공공재정에 손해를 끼친 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주민소송제도도 확보되어 있지 않다.
시민중심 부패통제의 두번째 길은 감시자를 보호하고 이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부패방지법은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신고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보상금의 상한은 2억원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보상금 사냥꾼이라는 언어의 유희를 통해 신고자를 매도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미국에서 일찍부터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했지만 고발자가 많지 않자 도입된 제도가 예산 부정의 신고 및 그 보상에 관한 규정이다.그런데 우리는 조직에 대한 충성과 직장 동료간의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조직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내부고발이 더욱 어렵고 따라서 보상을 통해서라도 신고자를 장려해야지 이를 부정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밖에도 국민감사청구제,검찰심사회나 배심원 제도,청렴서약제 등 다양한 시민 중심 부패통제 방법이 있는데 이들을 제도화 또는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김병섭 서울대 교수 행정학
2002-09-0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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