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길섶에서] 납골당
기자
수정 2002-04-02 00:00
입력 2002-04-02 00:00
시신을 태운 재가 바다에 뿌려져 뒤끝을 깨끗이 하려는 망자(亡者)의 희망이 유족에 의해 거부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사자(死者)를 땅에 묻고 그 위에 봉분을 만드는 것이아닌 다음에야 한줌의 재를 뿌리는 것과 납골당에 모시는 것 간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금주말 한식 때 교통체증을 겪을까봐 지난달 말 미리 산소를 다녀왔다.어린 꼬마들에게 절을 시키면서 문득 최근 세상을 떠난 그 분을 떠올렸다.그리고 부인이 끝내 재를 바다에뿌리지 않겠다고 거부한 이유가 다소 이해될 듯했다.한줌의재라도 보존하는 것이 삶의 허망함을 줄여주고 아이들에게아빠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이상일 논설위원
2002-04-0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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