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방한과 한반도/ (하)北의 선택과 진로
기자
수정 2002-02-23 00:00
입력 2002-02-23 00:00
북·미간 ‘적대관계의 청산’은 사실 북한의 오랜 요구사항이다.북한은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협정 체제로 바꿔체제안전을 보장받기를 간절히 원해 왔다.88년 ‘테러지원국’ 지정 이후 취해진 경제제재 조치에서 벗어나 경제난의 돌파구를 찾는 것도 시급하다.
북한은 94년 제네바협약,99년 베를린협약을 각각 맺고 미국에 대해 핵과 미사일 문제의 해결을 약속했다.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대가로 경수로 제공과 단계적인 경제제재 완화,적대관계 청산 및 북·미수교 등을 약속했다.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핵·미사일 이외에 재래식 무기까지 거론하며 북·미 문제를 ‘원점’으로 돌려놨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모든 선택방안을 고려중’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자세를 누그러뜨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북한은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났고,대화의‘명분’을 갖게 됐다.
전문가들은 소련·동구권의 몰락과중국의 자본주의화 이후 북한이 사는 길은 개혁·개방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그러나 미국과의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체제붕괴’의 두려움 때문에 남한의 ‘햇볕정책’조차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유환(高有煥·북한학) 동국대 교수는 “북한에는 북·미관계 개선과 개혁·개방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면서 “다만 부시 행정부가 핵·미사일·재래식무기를의제로 내세우면서도 세부적인 대화계획이나 일정 등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게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미국과의 문제 해결을 위한 ‘세부 일정’이 가시화될 때까지는 남한과 제한적인 대화·교류를하며 미국의 반응을 살피는 ‘선남후미(先南後美)’정책을 쓸 것으로 보인다.북한이 22일 평양방송에서 “북남 최고위급으로부터 시작해 각 정당ㆍ사회단체들에 이르기까지다방면적인 대화와 협상이 진행돼야 한다.”고 밝힌 것은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남한과 미국의 대화노력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부시 행정부가 언제까지기다려줄지 미지수다.게다가 내년 남한에 보수적인 정권이 들어서 미국의 부시,일본의 고이즈미 정권과 함께 ‘보수 삼각’을 이룰 경우 북한의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진다.
정부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북한 수뇌부들이 누구보다도 이런 사정을 정확히 꿰고 있을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북한이 조만간 남북대화는 물론 북·미대화에 응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영우기자 anselmus@
■한·미 다음주 전면적 대북접촉.
한·미 정상회담 이후 대북정책을 조율 중인 한·미 양국은 ‘대화 해결 원칙’에 따라 이르면 다음주부터 각각 전면적인 대북 접촉에 나서 가능한 모든 형태의 남북,북·미 대화를 성사시키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대화에 따른 ‘당근’은 없다는 게 미국측의 확고한 방침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조만간 이산가족 상봉단 교환을비롯,비료·식량지원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경제협력추진위,장관급 회담 등의 개최를 북측에 제의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도 내주 북·미간 뉴욕 채널을 가동하는 등 대북접촉을 강화할 것으로 전해졌다.
두 나라는 또 잭 프리처드 미 국무부 대북교섭 담당대사의 평양 방문이 성사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부시 미 대통령과 함께 방한했다가 서울에 남은 프리처드 대사는 지난 21일 오전 차영구(車榮九) 국방부 정책보좌관을 면담,평양 방문에 대비해 재래식무기 문제 등에 관한 우리측 의견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군 관계자는 “프리처드 대사가 김계관(金桂寬) 북한 외무성 부상의이름을 거론하며 부시 대통령의 대화의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정부 당국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신임하는 ‘김정일의 사람’인 김계관과 프리처드간 접촉이 성사될 경우 북·미 대화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다.
프리처드 대사는 21일 김성환 북미국장과의 실무협의에이어 22일 최성홍(崔成泓) 외교장관과 이태식(李泰植) 차관보 등을 만나 북한이 남북대화 제의에 긍정적인 반응을보일 경우 미국도 곧 북·미대화 재개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정기자 crystal@
2002-02-23 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