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재량권 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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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2-01-07 00:00
입력 2002-01-07 00:00
1980년 집권세력인 신군부가 설치한 기관으로 삼청교육대가 있었다.그해 8월4일 사회악을 일소한다는 명목으로 발동한 계엄포고령에 따라 군 부대에 둔 이 별난 교육기관에는 4만명 안팎의 국민이 끌려가 ‘교육’을 받았다.헌병들이 총을 든 채 연병장을 에워싼 상태에서 벌어진 이 교육현장에서 54명이 목숨을 잃었고 후유증을 앓다 사망한 사람도 397명이나 된다.이 숫자는 1988년 국방부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보고한 것이다.

삼청교육대 건은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발생한 다른 사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해 아직도 그 진상이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당시 신군부가 깡패를 소탕하겠다고 내세운 명분이 국민 일반에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일것이다.그래서인지 지금도 삼청교육대 이야기가 나오면 “그 사람들 어차피 깡패 아닌가? 희생자가 나온 건 안타깝지만 그 덕분에 세상이 한동안 깨끗해졌잖아.”라는 식의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러나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들이 깡패만은 아니었다.

하릴없이 동네를 배회하던 젊은이,사소한시비 끝에 경찰서에 간 보통시민,젊어서 문신을 한 것이 깡패란 증표로오인된 중년의 생활인,심지어는 반체제운동을 하던 대학생과 사정기관 직원에게 개인적으로 감정을 산 사람들까지끼여 있었다.또 설령 그들이 깡패였다고 쳐도 그들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고 죄값을 치르면 될 뿐 군 부대에 끌려가 가혹한 체벌을 받고 매 맞아 목숨을 잃을 만큼큰 죄를 저지른 것은 물론 아니었다.

삼청교육대와 관련한 중요한 사실이 최근 공개됐다.끌려간 시민을 폭행치사케 한 사례 3가지에서 가해 군인들이모두 벌을 받지 않았음이 밝혀진 것이다.군법회의에서 징역 4년∼1년6월 형을 받은 6명에게 부대장이 형 집행 면제처분을 내려 하룻만에,또는 열흘만에 풀려났다고 한다.당시 군법회의법 상에 이는 부대장의 재량권에 속했다.따라서 법적으로 부대장의 잘못은 기껏해야 ‘재량권 남용’에불과하다. 하지만 사람을 죽인 자를 풀어주는 일이 과연재량권에 속하는가.국민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숨지게 하고도 이를 묵인한 작태는,삼청교육대가 결국 ‘무력으로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국민을 협박하고자 마련한 장치’라는 해석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해준다.

[이용원 논설위원ywyi@
2002-01-07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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