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제발 공부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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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08-08 00:00
입력 2001-08-08 00:00
성적이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비교적 착실해서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일반 대학과는 전형요강과 교육방법이 약간 다른 모대학에입학 원서를 냈다.
딸애는 원래 동양화를 전공할 계획이었는데 원서를 낸 학교가 동서양화 구분이 없고 전형요강도 독특하다는 말을듣고 고민에 빠졌다.
실망에 빠진 아이는 “엄마 나는 머리가 굳었나 봐.도무지 생각이 안 나”라고 말하는게 아닌가.아마 “기죽지 말고 열심히 준비해”라는 격려를 기대했을 아이에게 난 대뜸 “공부하지마. 그래야 굳은 머리가 잘 돌아가지”라고말해버렸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했다.내가 보기엔 우리나라 수험생들은너무 공부를 많이 한다.공부나 그림그리기가 아니라 마치 전투를 준비하는 것 같다.
치열한 입시경쟁 탓으로 한창 예민할 감수성이 싹을 못 틔우고 있다.
나처럼 되도록이면 머리 안쓰고 공부도 최대로 안하면서살고자 하는 사람으로선 그날 그렇게 말하면서 한편으론통쾌함마저 느꼈다.
적성에 따라 그림에 소질이 있으면 그저 그림만 잘 그리면 될텐데….입시생 부담을 덜어 주기위해 만들었다는 숱한 대안 역시 현재로선 수험생들에게 부담만 더 주고 있는형편이니 참 답답하다.
이렇듯 치열한 경쟁이 훌륭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일류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 청소년은 너무 불쌍하다.
단지 한국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또래에 잃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연성이 마멸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열정을 갖고 자신의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그 결과가 어떻든 어느 것 하나 잃을게 없다고 본다.아무리 힘들어도 거기에는 꿈이 있고 인간성이 손상되지 않는건강함이 있기에.
제발 공부하지 마라.
그리고 느껴라.새소리,바람소리,저녁노을,빗소리,이름모를들꽃,꿈,사랑,정의,동정심,휴머니즘...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엄마 몇시까지 학원 앞으로 와주세요.”“알았다.그래,알았어.누가 뭐랬니?”.
□오명희 화가·수원대 교수
2001-08-0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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