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의식의 Y2K
기자
수정 2000-01-01 00:00
입력 2000-01-01 00:00
들뜬 마음으로 새천년을 고대했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어제와 다를바 없는 오늘에 허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지난 1년 내내 국내외 언론은 호들갑스럽게 새천년,뉴밀레니엄을 카운트다운해 왔고 세계 각국에서 막대한예산을 들여 여러해 동안 거대한 기념조형물과 요란한 축제를 준비해 왔다.
밀레니엄이라는 단어는 마치 도깨비방망이라도 되는 양 사용됐고 새천년은‘산 너머 저쪽’ 무릉도원처럼 여겨졌다.그러나 20세기의 험난한 산봉우리를 넘은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진 풍경은 똑같다.새천년에 떠오르는 태양을 조금이라도 먼저 보기 위해 동쪽으로,동쪽으로 몰려간 사람들이나 집에 앉아새해를 맞은 사람들이나 똑같은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세기의 전환,새로운 천년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기에 지난해와 다를 바없는 오늘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의식의 Y2K를 겪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광란의 축제 다음날처럼 아직도 몽롱한 상태로 단조롭고 평범한 일상을 마주한 자신을 실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새천년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없이 오늘 아침을 맞은 이들은 어떨까.기차가 철로위를 달리듯이 습관화된 타성에 이끌려 세밑의 반성도,새해 다짐도 없이 오늘을 맞았다면 그 역시 정상상태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시작도 끝도 없는 반복의 삶이야말로 컴퓨터가 2000년을 1900년으로 오인하는것과 똑같은 삶이다.
어느쪽이든 의식의 Y2K를 극복하지 않으면 새천년은 무의미하다.어제와 오늘과 내일,즉 시간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새 천년의 삶을 시작해서는 안될것이다.전통역법인 단기(檀紀)로 올해는 4333년이므로 기독교 문화의 산물인 서기 2000년에 법석을 떨 필요가 없다는 시각도 있지만 천년단위의 시간을생각하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어느 명상시인은 지난 10여년간 거의 해마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산이나 인도의 갠지스강에서 새해를맞으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이 삶에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 왔다 한다.모든 사람이 그 시인처럼 할 수도,할 필요도 없지만 오늘 아침만은 모든 사람이 지금 어느곳에 머물러 있건 간에 자신을 한번멀리서 깊이 바라보는 눈길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지금 우리 앞에는 아직 걸어 보지 않은 새 길,아무것도 그려넣지 않은 하얀 종이가 무수히 펼쳐져 있다.
任英淑 논설위원 ysi@
2000-01-0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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