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프랑스의 대숙청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1999-05-14 00:00
입력 1999-05-14 00:00
“과거는 어디까지나 과거일 뿐이다. 과거는 역사 속에 묻어버려야 한다.” ‘인간도살자’ 별명을 가진 나치 게슈타포(비밀경찰) 바르비가 1985년 프랑스 정보기관에 체포되었을 때 남긴 말이다.

바르비의 이 말은 한국에서 가장 잘 먹혀든다.과거가 ‘어두운’ 사람일수록 ‘과거청산’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한다.그러면서 현재가 중요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도 할 일이 많은데 언제까지 과거타령이냐며 여론을 왜곡한다.

이들은 한술 더 떠서 ‘미래지향’을 내세우고 마치 선각자연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처럼 ‘청산’해야 할 과거가 많은 국가도 흔치 않을 것이다.나라를 판 매국노와 친일파들로부터 군사독재 원흉,그들에 빌붙어 인권을 짓밟고 언론을 유린한 지식인·언론인,IMF환란을 불러온 책임자들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제대로 청산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오늘날 사회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고 새정부의 개혁작업이 그들의발목잡기에 시달리게 되었다.만년 양지족(陽地族),기회주의자들의 농간 또한 만만치 않다. 프랑스는 달랐다.4년여의 짧은 기간나치의 지배를 받았지만 드골 정부의과거청산 작업은 준엄했다.1940년 6월 프랑스는 패전과 함께 남북으로 분할되어 북부는 나치 독일군, 남부는 페텡의 비시 괴뢰정권이 다스렸다.비시 정권은 온갖 방법으로 나치에 협력하면서 조국을 배반했다.

해방과 함께 망명정부 자유프랑스를 이끈 드골은 나치 협력자 숙청에서부터 새나라 건설을 시작했다.나치 협력자 779명이 처형되고 2,777명이 종신징역,26,529명이 유기징역,3,678명이 공민권박탈형을 선고받았다.드골은 “국가가 애국자에게는 상을 주고 배반자나 범죄자에게는 벌을 주어야 국민을 단결시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나치 부역자들을 단호하게 처벌했다.

비시 정권의 페텡은 개인적으로는 드골의 스승이었지만 무기징역이 선고되고 옥중에서 자살했다.드골 정부는 나치 부역자 중 언론인·출판인·작가·지식인 그룹을 가장 가혹하게 다스렸다.드골은 “지식인은 도덕의 상징이기때문에 제일 먼저 죄를 물었다”고 밝혔다.친일파와 군사독재,환란 책임자청산에 손대지 못한 우리 처지에서 프랑스의 나치청산은 훌륭한 교훈이 된다.우리는 그동안 ‘프랑스의 교훈’을 떠올리면서도 막상 프랑스의 나치 숙청에 관련한 저서 한권,번역서 한권도 나오지 못한 황무지 상태였다.이 한가지 사실로도 우리 지성풍토가 얼마나 과거청산에 소극적이었는가를 보여준다.



언론인 주섭일(朱燮日)씨가 ‘프랑스의 대숙청-드골의 나치 협력 반역자 처단 진상’을 펴낸 것은 이런 의미에서 뜻깊은 일이다.남들은 반세기 전에 끝낸 일을 우리는 이제야 ‘교훈’으로 읽어야 하는가.

김삼웅주필
1999-05-14 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