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일제규탄/김태균 사회부 기자(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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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02-05 00:00
입력 1997-02-05 00:00
◎일 대사관앞 정신대할머니 노제에 숙연

『할 일이 많은데 벌써 죽을 수는 없다고,죽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도 다짐을 하더니…』

4일 낮11시50분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정문 앞.

지난 2일 타계한 정신대 할머니 강덕경씨(68)의 노제가 생전에 고인이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나와 시위를 하던 이곳에서 열렸다.

「한국 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와 정신대 할머니들의 생활터전인 「나눔의 집」 관계자 및 학생,시민 등 300여명이 비좁은 도로에 모여 고인을 추도했다.

15세때인 44년 정신대 1기로 일본에 끌려가 위안부생활을 했던 강할머니는 92년부터 일제 만행을 담은 그림과 수요집회,강연회 등으로 반인륜적 죄상을 고발해왔다.

영정과 검은 만장들이 일본대사관 주위를 에워쌌고 제상 뒤에 걸린 대형 걸개그림에는 강할머니가 마이크를 들고 일제만행을 규탄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눈이 있으면 가만히 있지 말고 내다라도 봐라』

살풀이굿과 일제만행을 재연한 연극이 펼쳐지는 동안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던 한 할머니가 급기야절규했다.다른 할머니들의 통곡도 한데 섞였다.



노제를 마치고 고인의 시신은 일본대사관을 한바퀴 돈 뒤 벽제화장터로 향했다.

「아아,산 넘어 산을 넘어/멀리 멀리를/정신대로 상등병에게 잡혀/내 몸은 찢겨졌다」­강할머니가 생전에 쓰라린 고통을 달래며 부르던 노래가 몇몇 할머니들의 울음과 향내음에 섞여 대사관 주위를 휘감는 동안에도 창문마다 굳게 커튼이 내려진 갈색 벽돌 건물 위의 일장기는 무심히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1997-02-0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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