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망명객(송정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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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1-18 00:00
입력 1996-01-18 00:00
처음,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 부인이 망명을 해오고 있다는 뉴스에 접했을 때 뭔지 석연치가 않았다.「여자망명객」이 생소해서만은 아니다.「누구의 아내」라면 그는 「누구의 어미」일 것이다.남편을 떼어놓고 혼자 도망나오는 일도 어렵지만 자식을 떼어놓고 혼자 살겠다고 나오는 어머니는 상상하기 힘들다.어떤 다급한 딴 이유가 있었는지 몰라도.

가족구성원 하나가 「배신」행위를 했을 때 북한이라는 집단이 하는 짓을 우리는 많이 들어 알고 있다.그곳에 남편을 두고 나오는 것은 죽음에 준하는 일이다.그러나 남편과라면 둘 사이에 남은 모를 어떤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부부란 애증이 난마처럼 얽힐 수도 있는 사이다.죽이도록 미운 마음만 남아서 아내가 혼자서 「망명」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그러나 자식은 다르다.북한 같은 「죽음의 땅」에 누구를 남겨두고 망명한다면 남겨질 사람은 그래도 부모뿐일 것이다.자식의 살길을 위해서라면 열번이라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부모라는 사람이다.그러므로 제가 죽으면 죽었지 저 때문에 자식이 죽을 일을,더구나 어미가 만들지는 못한다.그것이 모든 어미의 마음이다.

그런데도 혼자서 망명을 결심한 이 젊은 여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그래서 선뜻 마음이 안내키는 기분도 들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살다가 가족권솔을 거느리고 입북하여 대남방송이라는 것으로 북에 「봉사」하다가 아내와 두 딸은 남겨둔 채 다시 탈출해온 인사가 있다.그는 지금 두고온 가족에 대한 가책과 한스러움 때문에 국제기구에 호소하며 가족구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그의 애타는 호소를 전해 들었을 때 가슴은 아팠지만 한편으로 그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나쁜 사람,거기가 어디라고 가려면 혼자나 가지,가족은 왜 데려갔으며 탈출하려거든 죽든 살든 함께 해야지 그 사지에 가족을 버려두고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왔단 말인가…』

그렇게 응얼거리는 나를 보고 그 가족과 재독시절에 사귄 적이 있다는 한 부인이 변명을 해주었다.그의 입북은,지금은 고인이 된 재독 친북인사의 끈질기고음모적인 유혹 때문이었으며 가서야 속았음을 알고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그래서 그 부인이 한사코 탈출을 강권하여 혼자라도 도망나왔으나 나온 뒤 가족 생각에 너무 괴로워 모든 일을 포기하고 구명운동만 벌이고 있다는 것등을 말하고 나서 그는 이렇게 끝맺었다.『북에 남은 부인은 강한 모성애 때문에도 두 따님이랑 살아남을 거예요』

C씨는 해방기의 치안을 담당한 수도청장으로 이후에는 외무장관·국무총리까지 지내며 쩌렁쩌렁하게 권좌를 누리던 분이다.전력시비가 나오면 지금도 벌떼같이 나서는 자녀가 그에게는 있다.그밖에도 그분에게는 정실소생의 따님이 있었다.「말도 못다할 미인」이었다는 것이 그를 아는 사람들의 기억이다.그는 성장하면서부터 『소실을 두고 본가는 돌보지 않는 아버지』를 원수처럼 증오했다고 한다.그래서 대공수사를 중대소임으로 치안책임을 한손에 쥐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위하여 공산프락치들을 결혼한 자기집 은밀한 곳에 서슴지 않고 숨겨주곤 하다가 끝내는 그들과 이념을 함께 하는 사이가 되어 남편과 자식을 데리고 월북을 했다.그랬다가 마침내는 숙청되어 초라한 지경이 되어버린 그가 한탄하며 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이런 것도 모르고 가족까지 끌고 온 내 죄가 크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나야 내 죄 갚음이니까 달게 받지만,먹고 자랄 식량도,먹고 성장할 꿈도 없는 이 가축 같은 삶을 내 자식들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기가 막힌다』



주부망명객으로 서울에 도착한 뒤 조금씩 전해지는 최수봉씨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애초에 그는 가족과 함께 탈출을 하려고 일을 꾸몄다가 실패하고 부부만이라도 함께 나오려다가 그것도 실패하여 마침내 긴머리가 인상적인 「젊은 여자 망명객」이 되어 서울땅을 밟은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사람의 의지로는 할 수 없고 설명도 될 수 없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6살·9살짜리 자녀와 망명하다 실패한 남편을 그 땅에 남겨두고,그의 눈으로 보면 정신과 물질이 흐드러지게 풍요해 보일 남쪽 생활을 하게 된 그가 한편으로 반갑고 한편으로 많이 안쓰럽다.이런 여러 형태의 고통스런 이산은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것같다.「살 수 없고 이상해져버린」 우리의 또 한쪽 땅에 남겨진 서러운 동족을 위해,그들을 생각하며 한을 씹고 살아가는 많은 아픈 가슴을 위로하기 위해,따뜻한 마음으로 새해의 기도를 바친다.<본사고문>
1996-01-1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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