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열자는 가고 콜레라가 왔는데(박갑천 칼럼)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1995-09-18 00:00
입력 1995-09-18 00:00
「호열라예방규칙」이라는 내부령이 1899년 9월에 공포된다.이때의 「호열라」가 「콜레라」라는 질병이름을 소리따라 한자로 적은 우리 공식기록 아닐지 모르겠다.그전의 전적들에는 윤질·괴질·습온등으로 표기되고 있다.「지봉유설」(인사부)에 보이는바 옥온이라는 「전에 없던 병」도 이것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내부령 원본은 보지 못했지만 「호열라」의 「나」자가 문제다.소리적기에 따른 중국식표기는 「나」(랄:중국음이 「라」)이다.그런데 글자꼴이 비슷한 「나」(자·척)자로 잘못 쓰면서 「콜레라」의 「라」와는 멀어진 소리 「자」로 된다.한자농간에 놀아난 「호열자」.지금이니까 「콜레라」지 60년대까지도 신문·방송에는 그 「호열자」가 많이 쓰였다.그래서 나이든 세대 가운데는 지금도 시먹은듯 호열자라 하는가 하면 콜레라와는 다른 질병인 것으로 생각하는 이까지 있다.

그무렵에는 콜레라와 같은 1종전염병인 장티푸스도 「장질부사」로 표기되었다.역시 1종전염병인 페스트는 「흑사병」이라 표기했는데 그건 뜻으로 적은 한자의경우였다.그때문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도 「흑사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읽혔다.

한자쓰기 좋아했던 때이니 질병이름만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미터는 「미」로,톤은 「돈·둔」으로 쓰는가하면 제네바는 「주부」요 워싱턴은 「화성돈」.프레지던트(대통령)를 「백이새천덕」으로 쓰는데서는 벗어났다 해도 유길준의 「서유견문」 표기에서 맴돌았던 시절이다.그 꼬투리는 지금도 남아있다.프랑스를 이르면서 「불」,오스트레일리아를 이르면서 「호」,이집트를 이르면서 「애」같은 제목을 신문은 달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우리나라에 번져난 콜레라는 1821년것이 가장 모지락스러웠던것 아닌가 여겨진다.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가 좀 부픗한진 모르되 『수십만명이 죽었다』고 표현했으니 처참했던 상황을 짐작할만하다.그만은 못했다해도 광복직후의 콜레라 아닌 호열자도 호랑이위세였다.그랬건만 의약의 발달따라 한때 굽잡힌듯 곱송그린 콜레라.한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1종·2종·3종등 전염병의 개념을 다시 정해야 한다느니,그건후진국형 질병이라느니 하는 말들에 결기라도 난것일까.10여년전부터 주기적으로 설레발을 쳐온다.

콜레라기승이 한풀 꺾인듯하다.콜레라시대인데 괴질·호열자시대 위세에야 미칠수 있겠는가.1종자리도 내놔야 할때다.
1995-09-18 1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