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이름은 어디에?/김진애(서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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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6-10 00:00
입력 1995-06-10 00:00
비엔날레의 이번 한국관 개막은 뜻깊은 국제적 개가이다.경제·정치·스포츠·과학기술부문의 국제활동은 커지는 국력을 실감케 하는 보람을 주지만,역시 문화부문에서의 국제활동은 나라에 대한 차원높은 긍지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속깊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뜻깊은 의미를 십분 발휘케 하지 못하는 우리의 문화역량의 한계에 유감이 있다.연일 계속되는 보도에서 정작 미술관 개관의 숨은 주역인 우리 건축가의 이름은 빠져있고,미술관의 건축적 의미를 부각하는 어떠한 기사나 보도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관 건립을 이탈리아측에서 허락받은 작년부터 개막까지의 1년여동안 관련 뉴스에 관심을 두어왔다.인가받은 당시에는 주로 정부관료의 역할과 국제문화정치의 개가에 뉴스초점이 맞추어졌다.건축전문지에 미술관의 설계개념이 소개된 것 외에는 일반매체에는 그저 미술관이 건립되는 위치,아시아로서는 일본 다음으로 두번째로 독립관을 갖는 나라가 되었다는 소식,우리 건축가와 이탈리아 건축가가 공동으로 설계자가되었다는 소식이 고작이었다.

다음에는 개막행사의 참여미술작가 선정이 한참 뉴스가 되고,너무 짧은 시간동안 준비를 하게 됨을 아쉬워하는 참여작가의 소감,외국과 달리 충분한 재정지원이 없다는 한계의 지적이 뉴스가 되었다.건축에 대해서는 현지에서 미술관 건축공정이 늦어져 개막에 맞출 수 있을지 하는 지적이 고작이었다.과연 늦어지고 있다면 미술작품 제작공정보다 훨씬 더 복잡한 건축공정이니 왜 그러한 일이 벌어지는 상황은 밝히지 않는 불평수준의 뉴스였다.

다행히 무사히 개막이 되자 이제는 개막에 참가한 사회 유력인사들 이름은 거명되고,참여작가와 작품은 당연히 조명받고,그외의 이벤트도 소개가 되건만,정작 우리 건축가의 이름 석자와 「미술관건축」에 대한 어떠한 소개도 실리질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미술관 인가를 위하여 음양으로 뛴 우리 건축가의 역할을 부풀릴 생각은 없다.좋은 미술관을 짓기 위하여 에너지를 쏟은 것,짧은 공기에 맞추어 무리없는 개막을 위하여 동분서주한 것 모두 건축가로서 할 일을 한 것뿐이다.그러나 나라의 문화적 역량이란 그렇게 할 일을 한 사람의 노력을 알아주고 그 노력의 결과인 미술관의 건축적 의미를 제대로 음미해 주는데 있음에는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건축분야는 경제·정치·부동산가치·기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통상적으로 문화예술분야에서 제외되기 십상이다.그러나 건축이 그러한 복합적 속성을 갖기 때문에 뛰어난 건축과 건축가는 더욱 큰 문화예술적 의미를 가지며 건축은 건축분야 또는 건축가의 성취만이 아니라 총체적인 사회의 문화적 성취가 되는 것이다.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될까?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포크송에 나올 정도로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자리잡고,프랑스 전임 미테랑대통령처럼 직접 나서 진취적 건축성취의 손을 들어주고,멕시코의 작은도시 시장처럼 건축가와 함께 환경의 질을 위해 뛰게 될까? 당연히 건축물의 초석에 건축가와 시공자의 이름이 박힐 수 있게 될까?

결코 건축의 가치를 과장해서가 아니다.부실시공,부동산 투기문제,환경오염문제에서 진정으로 벗어나려면 궁극적으로 건축인들이 긍지와 명예를 걸고 일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외국 유명건축가와 건축기술의 수입에서 벗어나 우리 건축가와 건축기술을 수출하려면 바로 우리 자신이 우리 건축과 건축가에게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건축가의 이름을 살려주자! 건축가의 이름을 걸게 하자! 건축과 건축가를 조명함으로써 나라의 문화적 그릇을 키우자!<도시건축PD·(주)서울포럼 대표>
1995-06-1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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