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차관보에 거는 기대/이경형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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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2-23 00:00
입력 1995-02-23 00:0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서울방문은 한사코 「한국형경수로」는 받을 수 없다고 생떼를 부리는 북한에 정면대응하기보다는 한국정부로부터 양보를 받아냄으로써 이 문제를 풀겠다는 클린턴 행정부의 안이한 「훈령」을 집행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이같은 선입견이 잘못된 것이기를 바라면서 로드 차관보에게 몇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북·미관계개선의 길을 가면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안되는 것은 분명히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북·미 제네바합의가 이행과정에서 지금처럼 고비를 맞는 것도 따지고 보면 미국이 NPT(핵확산금지조약)체제의 유지에 급급한 나머지 「양보」의 연속에 의해 협상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협상과정에서 『안되는 것』을 못 가르쳤다면 합의이행 과정에서라도 이를 가르쳐야 한다.언필칭 유일강대국이 언제까지 질질 끌려갈 것인가.
둘째 북한의 가면을 조금이라도 벗겨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이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지금 미국은 북한체제가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주체」의 허울을 보호해주려고 안달이다.북한에 들여올 경수로에 「한국형」이라는 표지가 붙는다면 그들의 주체사상이 멍들기 때문에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자는 것이다.바로 이같은 발상이 북한의 위선을 계속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셋째 미국의 대북한 이해관계가 한국의 대북한 이해관계와 혹시 일치하지 않는 대목이 있다면 그때는 서로 솔직해져야 한다.미국의 구도에 따라 한국을 「봉」으로만 삼는다면 『북한동포에게 전기를 보내주는 셈치고 경수로를 건설해 주자』는 한국민의 컨센서스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로드 차관보는 미행정부 외교부서의 어느 누구보다도 북핵문제를 독립의제로 보지 않고 동북아시아의 포괄적인 지역문제의 틀속에서 보는 혜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그의 혜안이 서울에 머무는 동안 유감없이 발휘되기를 바란다.
1995-02-23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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