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총리」의 취임 100일/문호영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1994-03-26 00:00
입력 1994-03-26 00:00
국무총리라는 자리는 그 명칭이 말해주듯 국가의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총리로서 국가의 주요 정책에 충분히 관여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 정설로 돼있다.「실세총리」로 분류된 사람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그러나 설사 힘을 가진듯 보인 총리라도 그 힘을 제대로 행사하는 일은 드물었다.청와대에서 기획하고 각 부처에서 집행하는 일들을 그저 옆에서 바라보면서 가끔 「공자님말씀」같은 지시만 내리기 일쑤였다.

그런 면에서 이회창총리는 역대총리들과 확연하게 대비되는 인물이다.그래서 26일로 취임 1백일을 맞는 이총리의 그동안의 행적에는 「캘린더 저널리즘」적 호기심을 뛰어넘는 신선함이 있다.

「총리 이회창」의 면모는 관변단체의 폐지지시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이총리는 청와대측과도 사전 상의를 거치지 않고 새마을운동협의회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물론 대통령과의 교감이 어느정도 이루어진 상태였다는 후문이지만 웬만한 총리라면 여권의 반발을 무릅쓰는 지시는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같은 이유들 때문에 이총리에 대한 평가는 매우 좋은 편이다.1백일이면 언론과의 밀월이 끝나기에 충분한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그를 흠잡으려는 시도들은 아직까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학연에 기인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내각을 장악하는 능력도 뛰어나고 판사시절에 깨알같은 법조문을 읽어내려 가면서 익힌 판단력과 분석력도 상당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린 것만은 아니다.취임하자마자 지시한 국방부 군수본부의 포탄도입사기사건 조사가 흐지부지됐고 공직사회의 기강확립 또한 공무원의 처우개선과 맞물려 구두선에 그친 느낌이 없지 않다.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공무원사회의 복지불동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이회창이라는 인물이 과연 한 나라의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로서 적합한가라는 의문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이총리로서는 스스로의 영역을 넘어선다는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해서도 안되지만 그런 것들을 확대해석하는 이야기들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1994-03-26 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