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관의 강의(외언내언)
수정 1994-03-13 00:00
입력 1994-03-13 00:00
우리사회에는 다소 이중적인 의식구조가 있다.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사람은 훼절이라도 한 사람인 것처럼 보기 일쑤다.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고위직」을 사람들이 모두 배척하거나 원하지 않고 외면하는 것은 또 아니다.
집안에서 장차관같은 고위직이 탄생하면 『가문의 광영』임을 입모아 기리면서 대학교수가 나온 것은 그렇게 칭송하지는 않는다.그 대학교수가 좋은 학문적 업적으로 이름을 빛냈다고 해도 여전히 「가문」의 광영으로까지는 치지 않는다.어쩐 일인지 「관직」의 높낮이에는 불균형하게 민감한 것이다.
그렇다보니까 우리사회에서는,겉으로는 「고위관직」의 전력을 흡사 벗을 수 없는 때(구)나 도덕적 타락쯤으로 타기하기도 하고 모멸하기도 하는 일을 예사롭게 하고 있다.그런 현상이 실은 고위관직에 대한 탐닉의 오랜 관습이 낳아놓은 사회심리의 반증같은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된 것에는 역사적 인과도 있고 시대성도 내재하지만 어떻든 그런 시각이나 현상은 온당하지도 않고 이롭지도 않은 것이다.
적어도 장차관같은 직능은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서 나라 일에 참여하므로 그 경험이나 능력은 충분히 희소가치가 있다.특히 지금처럼 전방위의 국가경쟁력이 요구되고 국력의 결집이 최대한으로 필요한 다급한 시기에는 아주 소중한 자원일 수도 있는 것이다.그런 것을 본질과 관계없는 이유로 배척하고 사장시킨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손실이다.
남의 나라서는 이미 뿌리내린 이 제도가 우리에게서 적절한 때에 출발하는 것은 좋은 징조로 생각된다.성과를 기대한다.
1994-03-1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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