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여파… 불 패션 “실용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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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1-25 00:00
입력 1994-01-25 00:00
『패션은 보여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입혀지기 위해 존재한다』
유수한 프랑스의 패션업체 「발맹」의 대변인인 샹탈 비지오스가 최근 표방한 말이다.이 말은 프랑스의 패션업계가 장차 화려함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올봄 파리에서 선보이고 있는 각종 패션쇼들은 이미 이같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94년 봄·여름의 거리를 장식할 의상을 선보이는 요즘 파리의 고급브랜드 패션쇼에서는 자연섬유를 재료로 한 보다 싸고 실용적인 의상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와 관련,「기라로시」의 회장 리샤르 앙크윅은 『앞으로는 화려한 무도회나 대축제가 현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이는 고급 의상의 수요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말과 다름 없다.
파리 패션계의 분위기를 이처럼 변화시키는 직접적인 요인은 세계적인 경기침체다.경기침체가 패션시장의 큰손이었던 영화스타·부유한 상속녀 등에게까지도 의상예산을 줄이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 패션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이들도 이제는 옷을 한철 입고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작년까지만 해도 철이 바뀔때 한번 입었던 옷을 다시 꺼내 입는것을 이단시했던 것이 프랑스 상류사회의 분위기였던데 비하면 이는 엄청난 변화다.
이런 상황에서 패션업계가 언제까지나 고급의상만을 취급할 수 없는것은 당연한 일.파리에서 유명 브랜드를 취급하는 패션업체들은 지난해에도 한차례 된서리를 맞았다.
대표적 예로 「기라로시」는 불황의 여파로 작년 한해에만 1억2천프랑(2천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그 결과 「기라로시」는 자사 브랜드의 옷값을 낮추고 새로운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등 자구노력에 나섰다.
앙크윅 회장은 『우리는 더 이상 고가판매를 고집할 수 없게 됐다』며 『기라로시 브랜드를 더 많은 사람들이 입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옷값을 낮췄다』고 말한다.
「발맹」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발맹」도 소비자의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지난해말 도미니카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를 영입했다.그가 옷을 디자인할때 외양보다는 실용적인 면에 치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영입이유다.이는 실용성을 우선 따지는 미국인 소비자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발맹」의 미국시장 진출을 더욱 용이하게 하기 위한 발상이다.
그러나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불황이 미국인들을 보호주의자로 만들고 있다며 여전히 미국시장 침투가 쉽지는 않을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한가지 올초 파리패션계의 두드러진 현상은 아랍풍 의상의 등장이다.따라서 요즘 파리에서는 통이 헐렁하고 발목을 조인 하렘 바지에 터번을 쓴 모델이 나오는 패션쇼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도 역시 부유한 아랍 산유국들의 소비자를 의식한 패션업계의 자구노력으로 해석되고 있다.
프랑스 패션협회의 자크 무클리에 회장은 『이제까지는 고객이 우리를 찾았으나 이제는 우리가 고객을 찾아나서야 할때』라며 변화를 통한 자구노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박해옥기자>
1994-01-2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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