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경쟁… 세계시민을 키우자/선진화의 길 특별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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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11-22 00:00
입력 1993-11-22 00:00
◎교육제도 근본 혁신… 창의적 인재 양성/흉내내며 뒤좇지 말고 흐름 선도해야/“모르면 당한다”… 언어·문화장벽 극복 서두를때/김호길 포항공대 학장/이상우 21세기위원장·서강대 교수/

경제전쟁으로까지 불리고 있는 국제경쟁에서 이기고,다가오는 21세기를 주도하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위해 선진화와 국제화가 국가적인 주요과제가 되고있다.오늘날 우리는 과연 어느 수준에 있으며 선진화·국제화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김호길 포항공대학장과 이상우 21세기위원장(서강대교수)의 대담으로 선진화·국제화의 방향과 과제등을 들어본다.

▲이상우위원장=최근들어 선진화와 국제화가 우리의 주요과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이 시대 우리에게 왜 선진화·국제화가 꼭 필요할까요.

▲김호길학장=교통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한 이웃이 됐고 그 이웃을 무시하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정치적으로는 이념의 장벽이 무너지니까 이웃국가와 더 가까워져서 경쟁이 나라안이 아니라 나라간에 더욱 치열해 졌습니다.이런 상황에서 경쟁에 이기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선진화와 국제화가 필수적입니다.

▲이위원장=옛날에는 같은 우물을 먹는 사람이 이웃이고 같은 냇물로 농사짓는 사람이 고을을 이뤘습니다.그러나 이제는 전세계가 이웃이고 활동무대입니다.한마디로 지구화되고 있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위해 국제화의 필요가 절실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선진화·국제화 일까요.

▲김학장=글쎄요.국제화하는 것이 선진화의 길이며 국제화란 곧 나라나 언어의 장벽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닐까요.전세계를 의식하고 세계를 이용한다는 생각으로 합리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이위원장=국제사회의 보편적인 행위준칙을 따르는 것이 국제화나 개방화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우리의 사고방식을 지금까지의 국가단위에서 인류가 다같이 추구하는 수준으로 넓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태평양의 어느 곳의 해양오염이나 시베리아의 삼림도 우리 문제라는 세계시민의식을 가지는 것이 곧 국제화라는 말입니다.

▲김학장=인도네시아인의 생활도이해하고 미국 흑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도 역지사지로 생각해야 합니다.민족과 국경을 초월해 서로 존경하고 이해하고 협력하는 것이 국제화의 기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위원장=그렇습니다.바깥세상의 행위준칙을 국내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떼어놔서는 안될 것입니다.천안문사태때 중국 고위관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그 관리가 『우리 애들 종아리 좀 때리는데 왜 태평양 저쪽에서 난리냐』고 불평을 하길래 제가 『세계시민의 일부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대답해줬습니다.

○제2의 개화를

▲김학장=19세기말 일본은 서양과 조약을 맺으며 국제조약이 뭔지 몰라 잔뜩 사기를 당했습니다.그뒤 일본은 똑같은 방법으로 구한국과 협약을 했고요.국제 준칙과 관행을 배워야 합니다.최소한 몰라서 당하는 일은 없어야 겠죠.

▲이위원장=19세기말의 국제화는 바로 개화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개화가 늦어지는 바람에 열강에 몰리고 식민지와 분단 및 미군정 등 여러가지 수모와 고통을 겪었지 않습니까.18∼19세기 서세동점 시대에 문닫고 국제화에 신경쓰지 않는 바람에 우리보다 한 50년 먼저 국제화한 일본에 당했습니다.그런데 요즘 국제화는 전세계로 빨리 뛰어나가 공장을 짓고 무역을 하는 등 세계사의 흐름에 직접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과거와는 다른 제2의 국제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아무튼 제2의 국제화에선 결코 뒤지지 않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선진화·국제화 수준은 과연 어느 정도나 될까요.

▲김학장=기업은 비교적 국제화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선진시장에 수출할 생각으로 물건을 만드니 어느정도 국제화의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겠죠.가장 후진적인 분야는 학계·교육계입니다.과학기술분야는 말하기 비참할 정도입니다.1920년대의 일본 정도라고나 해야 할지…기술이란 것은 사람의 능력입니다.남해에 석유가 발견되면 우리나라는 부자가 되겠지만 당장 능력이 늘어나지는 않습니다.기술은 한세대안에 나올 수는 없는 겁니다.2000년대에는 우리도 G­7에 들어간다거나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이는 기술과 교육을 너무 얕보고 역사발전을 너무 쉽게 보는 것입니다.

▲이위원장=전적으로 동감입니다.사회과학 계통을 보면 동경제대에서 교육받은 우리 세대가 21세기 세대에게 강의하고 있는 형편입니다.다행스러운 것은 해방직후 한반도에 대학이 하나 밖에 없었으나 이제 대학이 1백51개나 되고 90%나 되던 문맹률도 거의 제로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것입니다.그러나 대학이 1백51개나 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이것도 대학이냐하는 자괴감이 듭니다.1백년 앞을 내다보는 일이 교육이라고 했습니다.그런데도 교육이 너무 눈앞만 내다보고 있지 않나 염려됩니다.

○눈앞만 봐서야…

▲김학장=교육의 첫째 조건은 교육자가 최선진적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래야 피교육자가 빨리 자랍니다.동경대 초창기에 물리학교수를 영국에서 모셔와 영어로 강의를 했습니다.거기서 길러진 졸업생들을 영국으로 유학보내 교수자격을 갖추게한뒤 다시 데려와 일어로 강의를 하도록 했습니다.이들에게 교육받은 학생들은 급성장을 했죠.이에비해 우리는 그동안 독학하다시피한 교수가 대학을 만들고 다음세대를 가르치는 식이었습니다.

▲이위원장=농부는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듬해 뿌릴 씨는 보관합니다.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나쁜 씨만 남겨놓고 좋은 종자는 다 먹어버리는 대책없는 일을 저질러 왔습니다.그래도 생활양식면에서는 국제화가 많이 된 셈입니다.각종 제도도 그런대로 국제화의 흉내는 내고 있습니다.그러나 제도는 남의 것을 베껴 놓았으나 의식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헌법은 제일 좋은 것을 베껴놓았으나 민주화가 안되는 것은 의식이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눈에 안보이는 우리의 의식을 어떻게 국제화해나가느냐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김학장=기술운영 능력은 한두 세대가 가야,그것도 열심히 노력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결국은 교육밖에 길이 없습니다.교육은 서두르는 것보다 느긋하게 미래를 위한 바탕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국제화에 필요한 교육은 상대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합리주의적인 사고를 갖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또 국제화에 대비,실용적인 외국어교육을 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구도 큰 자원

▲이위원장=세계사의 큰 흐름에 따르는 것이진보입니다.예컨대 한자를 없애는 것이 애국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속좁은 소견입니까.일본이 명치시대에 그 많은 서양의 어휘를 한자어로 바꿔 놓았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한자문화권인 한·중·일 3나라만 모국어로 대학 강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당시 일본에서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말한 「리베르테」라는 용어를 10년 동안 여러가지 후보작을 시험하다 오늘날처럼 자유라는 단어로 정착시켰습니다.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의 주요대학 강단에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외국인이 한국에서 교수 노릇을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이런 풍토에서 하루가 달라지는 세상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겠습니까.빨리 의식을 국제화하는 국민운동이라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김학장=같은 생각입니다.필요하다면 소련사람이든 유태인이든 흑인이든 과감하게 데려와 배워야합니다.대학입시를 비롯한 교육제도는 개혁이 아니라 근본부터 완전히 혁신해야 합니다.

▲이위원장=물론 의식의 국제화를 우리 것은 버리자는 것으로 오해해선 안됩니다.우리 고유문화를 인류의 보편적인문화와 접목해 국제화·선진화하자는 것입니다.국제화를 위해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김학장=한 노벨상 수상자가 인간자본(HUMAN CAPITAL)이란 말을 썼죠.옛날에는 자원이 많고 인구가 적어야 부국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호주나 남미보다 인구가 많은 일본이 더 부국입니다.결국 교육을 잘시키면 인구도 큰 자원이 됩니다.즉 선진화·국제화된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과제의 핵심입니다.

▲이위원장=그런 측면에서 남북한 겨레와 해외교포 7백만을 포함해 8천만 한민족을 잘만 활용하면 우리도 선진국으로 충분히 발돋움할 수 있을 겁니다.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이 그동안 남의 탓만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 소홀한 점을 자성하는 한편 국민을 계몽하는데서 국제화와 선진화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모두가 반성을

▲김학장=1백년 앞을 생각하면서 현실의 급한 일도 해결해야 합니다.맡은 분야에서 국제수준과 비교해서 반성을 해봐야 합니다.기업은 물건을 세계적 수준으로 만드는가.교수는 국제수준의 논문을 낼 수있느냐.한번씩 돌아보고 보완하고 자책하는 운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위원장=좁은 나라 안에서 옆의 동료와만 비교해 질시하는 따위의 자해행위는 그만둬야죠.비교기준과 척도를 국제사회로 삼는 것이 국제화의 첫걸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얼마전까지만 해도 국력을 얘기할 때 군사력이 제일 중요한 요소로 치부되었습니다.10여년전부터는 경제력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습니다만 21세기는 문화수준이 관건입니다.

▲김학장=결론적으로 선진화·국제화를 위해서는 보다 창의적인 인간을 길러야하며 이를 위해 교육이 중요합니다.모방도 철저하게 잘 하는 것이 필요하고요.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병행해서 장기적으로 무엇이 중요한가를 염두에 두고 국제경쟁력을 기르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정리=구본영·이도운기자>
1993-11-2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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