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구조의 병」 고칠 장중경은(박갑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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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7-24 00:00
입력 1993-07-24 00:00
지난 월요일,신단양에서 출발한 관광선을 타고 충주호를 내려갔다.좌우로 펼쳐지는 절경에 탄성이 절로 난다.누군가 말한다.『홍도·백도 못잖네그려』.이 물속에 잠겨버린 마을이 한둘이 아니고 보면 수많은 사연을 깔고있는 호수이기도 하다.한데,물위를 둥둥 떠흐르는 각종 빈깡통에 과자봉지따위 쓰레기들이 무아경의 흥을 깬다.어떤 귀퉁이에는 수백수천개씩이 밀려있어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관광선에서 버린 경우가 있었던지도 모른다.그러나 그 대부분은 호숫가 놀이터에서 버린것들이 빗물에 씻겨 흘러내려온 것임을 금방 알수 있다.절경위에 우리의 군단지러운 질서의식·공중도덕의 주검들이 널려있구나 싶었다.왜 그걸 거두지않고 관광선으로 「관광」은 시키는걸까.서로들 「내가 할일」이 아니라면서 미루는 탓이겠지.

그「공중도덕의 주검」들을 보면서 며칠전의 일을 떠올려본다.을지로어귀 지하도에서 한 백화점으로 올라가는 곳의 광경이다.양쪽으로는 계단이 있고 가운데에 에스컬레이터가 있다.시간에따라 조금씩 차이는 났지만 에스컬레이터 쪽에서 줄을 서 기다리면서도 훤히 비어있는 계단으로 걸어올라가지 않는 것을 약5분동안 지켜보았다.계단을 오르며 세어보니 25개였다.

에스컬레이터 기다리는 일을 잘못되었다고 하는것은 아니다.하지만 거기에 비치는 오늘의 우리들 의식구조의 심층만은 바로볼수 있어야겠다.이는 겉으로야「공중도덕의 주검」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인다.그렇지만 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의식구조의 뿌리가 같음을 알게 될것이다.몇발짝이라도 걸어올라가기 싫은마음과 먹고난 뒤치다꺼리 싫은마음은 한동아리라 하겠기 때문이다.오늘의 우리사회 모든 병폐는 이렇게「나」만 생각하면서 「너」는 가볍게 보는데로 집약된다.어떻게든 편하려고만 들면서 남을 거우는 것쯤 예사롭게 여긴다.내가 전체속의 일원임을 잊고 오히려 전체를 내 편익속으로 끌어들이려 한다.이 병폐가 고황에 든듯하다.

등루부를 지어 문명을 날렸던 건안칠자의 한사람인 왕찬은 한센씨병으로 40세에 죽는다.당대의 신의 장중경은 20년전에 그의 병을 예진하고 약을 지어주지만 왕찬은 이를 무시한다.왕찬을 아꼈던 장중경은 탄식한다.『어허 이사람.내말 안들으면 죽는단말여,죽어.눈썹 빠지고 얼굴 뭉개지면서』

「의식구조의 병」을 고치지 못할때 우리는 『죽는단말여,죽어』.이병 다스릴 장중경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우리들 모두의 마음에 있을 뿐이다.<서울신문 논설위원>
1993-07-2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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