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 「아름다운 얼굴」/공지영 「인간에 대한…」(이달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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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7-07 00:00
입력 1993-07-07 00:00
시가 「위대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라면 서사 작가의 눈은 기본적으로 「과거」로 향해있다.시는 정지(정지)하고 서사는 흐른다(진행한다).소설속의 시간이 「현재」라 할지라도 그것을 쓰는 작가는 회상과 추억의 시점에 서 있다.『소설의 외면적 형식은 전기(전기)이며,내적 형식은 문제적 개인이 명백한 자기인식으로 이르는 여행』이라는 잘 알려진 명제는 소설 양식의 본질적 성격을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창작과 비평」봄호에 실린 송기원의 「아름다운 얼굴」과 「실천문학」여름호에 실린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는 바로 거기에 닿아 있다.그러나 이 두 작품을 우리가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다만 그들이 소설 양식의 본질을 모범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다.사랑처럼 말하기 쉽고 사랑처럼 말하기 힘든 것이 어디 있으랴! 이 쉽고도 어려운 작업을 해내야만 하는 작가의 운명은 때때로 그에게 손쉬운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쉬운 길을 택할 때 작가는 독자를 가르치고 훈계하려는 욕망에 빠진다.어려운 길을 택할 때 그는 소설의 옷을 벗어던지고 추상과 잠언의 세계로 빠져든다.좋은 소설은 그 갈림길을 지양하고 새 길을 찾아낼 때에 탄생된다.
소설가로서는 근 십년간의 침묵을 깨고 발표된 송기원의 「아름다운 얼굴」은 세상에 대한 증오와 자기혐오를 위악으로 방어하던 한 인간의 내면이 마침내 이르게 된 진정한 자기사랑의 기록이다.이 소설은 고고한 자세로 결론을 제시하려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는 소설들,자신과 세계의 추악함을 날 것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과장된 조소」의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소설들의 한계를 거뜬히 뛰어 넘고 있다.지극히 사적인 체험이 역사적 공공성이나 보편성을 획득하는 그 자리가 바로 소설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자리라는 것,그것을 알게 해주는 것도 이 소설의 미덕이다.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도 그와 유사하다.그녀의 소설은,변혁에의 의지와 노력이 무참하게 매도되고 조롱받는 시대,현실로부터의 관념적 초월이나 동경이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시대에 우리가 간직해야 할,세상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사랑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그것이 섣부른 훈계나 포즈로 전락하지 않는 것이 작가의 기량일 터인데,그 점에서 공지영은 기대를 충족시킨다.
사람들이 모두 앞만 보고 있는 시대에 소설은 뒤를 돌아본다.우리가 지나온 세월,그 흔적을 더듬는다.그리고 그것을 통해 앞을 비춘다.인간이 멸종되지 않는 한,소설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김철 문학평론가>
1993-07-0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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