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약화내부갈등 감추기 “역공세”/한총련 과격시위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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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6-01 00:00
입력 1993-06-01 00:00
「한국대학총학생연합」소속 학생들이 지난 29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과격시위로 구태의연한 양상을 표출한 배경은 무엇이며 그들이 겨냥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총련」 출범 마지막 날 서울 시내곳곳에서 벌어진 쇠파이프와 최루탄의 공방은 문민정부 출범이후 최대규모로 이과정에서 시민들이 큰 교통불편을 겪었음은 물론 학생 30여명과 경찰 40여명등 모두 70여명이 부상을 입는등 과거의 악순환이 재연됐다.
「생활·학원·투쟁의 공동체」를 기치로 한 한총련이 과거의 전대협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과격폭력시위를 벌임으로써 문민정부의 민주화개혁 의지를 훼손하고 국민들의 사회정화 열망에 역행했다는 지적이 비등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북한 대학생대표들과 정부의 허락없이 국제전화로 남북청년학생 자매결연등을 논의하고 경찰의 진압장비를 빼앗아 불태우는등 불법시위를 벌여 충격을 주고 있다.
이같은 학생들의 과격시위에 대해 검찰이주동자 검거령을 내리고 압수수색을 하는등 예전의 전대협과 정부당국간의 긴장양상이 다시 표면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의사표시는 그것이 다중시위 일지라도 이를 허용한다는 방침이며 이번에도 한총련이 신고한 집회·시위를 허가했었다.
그러나 「한총련」은 5·18민주화운동의 책임자 처단을 내세워 불법·과격시위를 재현했다.이같은 학생운동의 과거회귀는 최근들어 자신들의 침체된 「운동」분위기를 일신하고 위상을 제고하는데 목적을 둔 전략적인 행동으로 풀이 되고 있다.문민정부 출범이후 민주화와 개혁이 정부주도로 추진되면서 학생운동권과 재야 운동권은 오히려 정치적인 이슈를 상실해 표류하고 있었던게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된 현실속에서 각대학 총학생회는 「생활총학생회」등을 표방하며 일반학우들의 지지와 동참을 호소함으로써 나름대로의 입지확보를 하려 했다고 볼수 있다.
특히 학생과 일반시민들에게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출범식을 계기로 「자극적인」뭔가를 보여 줌으로써 일반인들의 시선을 끌려고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출범식에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남북통일을 위한 학생예비회담을 연다며 국제통화를 감행한 사실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한총련」이 경찰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서울시내에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전경들의 장비를 빼앗아 불태운 행위도 자신들의 투쟁성과 선명성을 돋보이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한총련」이 과거 「전대협」과 달리 민주적 의사결정을 위해 협의체가 아닌 연합체로 성격을 바꾸고 학생들의 관심사인 강의평가제·등록금문제·사립학교법문제 등을 다루는 것도 우선 대중성확보를 위한 포석이었다.이를 감안하더라도 29일의 폭력은 「우리가 옳으면 그 수단은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과거의 잘못된 학생운동행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한총련」은 자신들이 겉으로 표방하는 것과는 달리 단지 자신들의 위상제고를 위해 변화하는 사회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무언가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나가려는 의도에서 이같은 과격시위를 한것이 아니냐는 시민들의 세찬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박현갑기자>
1993-06-0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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