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고을태수 전별금악습 뿌리뽑아(역사속의 청백리)
수정 1993-03-25 00:00
입력 1993-03-25 00:00
또한 그는 역사상 최초로 백성들이 지방관의 재임시절 선정을 기리는 선정비를 세워준 인물이다.
당시 고려말엽에는 고을의 태수가 바뀔 때면 그 고을의 백성들이 전임 태수에게 오늘날의 전별금 형식으로 말 여덟필을 기념품으로 전달하는 풍속이 있었다.그러나 고려말에는 지방 곳곳에서 부호들이 발호한데다 매관매직이 성행,지방수령의 이동이 잦은 고을에서는 지방수령이 교체될 때마다 말 여덟필을 갹출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 되곤했다.
그런데 최석이 승평(지금의 순천)부사의 임기를 마치고 개경의 비서낭으로 승진하여 떠날 때 그가 거느리고 있던 아전들이 그 고을의 말을 모두 끌고와 이중 마음에 드는 것으로 여덟마리를 고를 것을 청했다.
아전들의 뜻을 짐작한 최석은 개경까지 갈 수 있는 말이면 아무 말이나 상관없다면서 그중 여덟필을 받아 짐을 싣고 개경으로 돌아왔다.그런데 도중에 그 중 말 한마리가 새끼를 낳아 모두 아홉마리가 되었다.
개경의 자기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고난 최석은 남들처럼 그 말들을 자기 소유로 하지 않고 도중에 낳은 망아지까지 아홉필을 돌려보내면서 「이 망아지는 내가 그 고을에서 가져온 말이 낳은 것으로 어미와 함께 같이 보낸다」는 서찰을 동봉했다.
이를 본 승평부민들은 최석의 청렴한 정신과 덕을 칭송하는 비를 세웠는데 훗날 팔마비로 불렸으며 지방관의 덕을 기리는 선정비의 시초가 됐다.
최석이 이처럼 양이로서 한번 모범을 보이자 그 뒤부터는 퇴임하는 태수에게 말을 선물하는 폐단이 근절됐을 뿐만 아니라 후임태수들도 이를 요구할 수 없게 됐다.
최석이 충군애민하는 정신으로 선정하고 악습을 없앴다는 기록은 오늘날까지 팔마비에 보존되어 전해져 오고 있다.<우득정기자>
1993-03-2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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