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김상복 할렐루야교회 담임목사(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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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12-04 00:00
입력 1992-12-04 00:00
서두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보고싶은 나의 아들 상복아!』「나의 아들」이라니? 「아들」이라면 「어머니」가 쓴 편지가 아닌가? 나의 어머니는 평양에 계신데 어머니께서?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어머니!』19 50년 6·25전쟁중 유엔군이 후퇴하던 당시 나는 평양에서 얼떨결에 어머니와 헤어졌다.어머니라면 지금은 80이 훨씬 넘으신 노할머니가 되셨을 터인데 아직도 살아 계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급하게 읽어내려갔다.그해 8월14일 폭격에 돌아가신 아버지,방공호에 들어가 무사히 살아 남은 네 동생들,수많은 조카들의 소식,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보고싶으시다는 애절한 어머니의 하소연들이 알알이 적혀 있었다.믿어지지가 않았다.그러나 믿고 싶었다.나는 이 시간을 위해 36년동안 날마다 기도해 오지 않았던가? 수십년만에 나의 기도가 응답되어 어머니의 편지를 막상 손에 들고보니 오히려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실 분이 없었는데 그 분이 아직도 살아계셨구나! 『어머니!』
일년이지난 다음해 여름 어머니를 나의 가슴에 끌어안을 수 있었다.36년동안의 꿈은 현실로 나타났다.이 세상에는 「어머니」란 단어보다 더 큰 단어가 없다.이제 새로 탄생할 대통령은 어떤 일보다도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수많은 이산가족의 아들과 딸들에게 부모님들 앞에 무릎꿇고 『어머니,아버지』를 부르며 큰 절을 할수 있는 기회를 하루 속히 만들어주기 바란다.
1992-12-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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