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교습” 폭력비디오/이도운 사회1부기자(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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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10-07 00:00
입력 1991-10-07 00:00
『아저씨,증거 있어요』
최근 서울 마포경찰서 형사계에서 조사를 받고있는 한 어린이는 이렇게 말했다.
경찰이 조사하고 있는 이 어린이는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서 일어난 남매 살해방화사건의 범인 아닌 범인(?) 권모군.
올해 겨우 만 10살을 넘긴 국민학교 4학년 어린이다.
권군은 사건 당일 자신의 집에서 1살 어린 여동생과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 화가 나자 흉기로 찌르고 이불로 뒤집어 씌운뒤 성냥불을 그어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을 숨지게 했다.
이 소년은 범행을 저지르고 난뒤 태연히 집을 나와 이웃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부모를 찾아 갔다가 만나지 못하자 거리에서 만난 친구 박모군(11)에게 『집에 불이 났다』면서 함께 범행현장에 돌아갔다.
사건직후 권군은 경찰에서 『동생과 비디오를 보고 있는데 우체부복장을 한 40대 남자가 들어와 동생을 죽이고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
권군의 이같은 말에 따라 경찰에 권군 부모에 대해 원한을 지닌 자의 소행일 것으로 보고 여러차례 조사를 벌였으나 번번이 헛탕이었다.
경찰은 『우체부가 범행했다』 『누나가 시켰다』며 횡설수설하는 권군의 진술이 의심스러워 원점부터 다시 수사를 시작했다.
경찰이 권군을 다시 불러 수사하기를 5차례.
권군은 끝내 5일 상오 경찰에서 『말다툼끝에 동생을 죽이게 됐다』면서 『최근 친구로부터 들은 비디오영화 내용대로 범행을 꾸미면 경찰이 속을것 같아 이같이 거짓 진술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권군은 또 『비디오영화의 주인공들은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라고 말해 이 사건을 맡았던 담당형사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경찰조사결과 권군은 부모가 시장에서 장사를 해 낮에는 주로 동생과 비디오를 보아왔으며 권군이 최근에 본 비디오영화에는 우체부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달아나는 것이 있었다.
이 사건을 맡았던 마포경찰서 진창현 형사반장은 『10살밖에 안된 어린이가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동안 여러차례 조사를 받아오면서도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며 죄를 숨겨온 것이 두렵기조차 합니다』라고 말했다.진반장의 말에는 「비디오가 유죄인가」「맞벌이가 유죄인가」라는 의문부호가 담겨있었다.
1991-10-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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