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용 드러낸 경복궁 근정전/임영숙 문화부 부장급(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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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6-06 00:00
입력 1991-06-06 00:00
유월 하늘에 날아오를 듯 치켜선 근정전 처마의 전선과 북악의 산 그림자,그리고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듯한 수제천의 유장한 가락이 어울려 만들어낸 아름다운 정경. 5일 상오 10시30분 경복궁 복원 기공식에 참석한 이들은 이 정경 속에서 정일의 한 순간을 맛보았다. 조선조 이후 근정전에서 처음 열린 국가적 공식행사는 그토록 격조가 있었다.

이날 행사의 핵심은 개기고유제. 궁궐을 지을 때나 성곽을 축조할 때 천지신명께 먼저 고하여 시공과정의 무사고와 안택을 기원하는 전통의례인 이 의식이 진행되는 30분 동안 경복궁은 조선왕조 5백년의 위엄을 되찾았다.

비록 등가·헌가의 궁중음악 격식을 제대로 갖추진 못했지만 국립국악원·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KBS국악관현악단연주자 1백20명이 정재국 국악원 악사장의 집박 아래 수제천과 종묘제례악·서일화지전(해령) 등을 연주했고 중요 무형문화재 종묘제례 예능보유자 이은표옹(77)의 집례에 따라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전례연구위원 8명이 엄숙하게 전통의식을 거행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이날 치사를 통해 얘기했듯이 『우리 겨레의 자존과 긍지가 깃든 경복궁을 복원하여 일제에 의해 훼손된 민족사의 정기를 회복』해야 한다는 느낌을 절실하게 와닿게 한 의식이었다.

심지어는 경복궁 안에서 근무하는 문화재관리국 직원들까지도 이날 경복궁의 아름다움과 위용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복궁 복원 기공식이 의식으로서 성공한 것은 의식 자체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근정문의 역할이 크게 기여했다.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근정전을 가로막고 들어선 이후 근정전 출입은 동쪽 행각을 파고 만든 협문을 통해 이루어져왔다. 따라서 근정전의 위엄을 좀처럼 맛보기 어려웠는데 이날 행사를 위해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이 열림으로써 정전·편전·침전으로 이어지는 전통궁궐 양식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헐리기 전이라도 일반인의 근정문 출입이 허용된다면 『제대로 된 궁궐 하나쯤 갖는 호사』를 최소한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991-06-0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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