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로 투표장에 나가자(사설)
수정 1991-03-26 00:00
입력 1991-03-26 00:00
민주주의를 가꾸고 키워 지키려면 말로써가 아닌 행동으로 참여하고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권리만을 주장하나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려면 앞으로는 더이상 민주주의를 논의하지 말고 정치가 어떻다느니 탓하지 말아야 한다. 후보이름조차 모른다면 그것은 확실히 유권자 자신의 무관심일 수 밖에 없다.
○기초단위 지방의회의 큰몫
다시,오늘이 무슨 날인가. 주민 모두가 스스로 자기를 다스리고 발전시키는 자치가 과연 우리에게 가능한가,그리고 가능하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로부터 얼마나 발전할 것인가,아니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가가 판가름나는 날이다. 우리 민주주의의 앞날이 시험대에올라있는 것이다. 참으로 엄숙한 순간에 귀중하고 소망스러운 명제앞에 서 있다는 사명감을 갖고 지금 바로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지방자치는 곧 지방정치의 민주화이다. 만약에 한 나라가 중앙정치는 민주화되는데 지방정치는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하고 비민주적으로 나간다면,다시말해 지방자치를 실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체적으로 불균형하고 형식면에서 불완전한 민주주의라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지방수준에 무슨 정치가 있겠는가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지방정부의 역할과 그몫에 대한 지금까지의 그릇된 인식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국민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런 오해를 가질 수밖에 없게끔 하는 여건을 의도적으로 조성해온 오랜 권위주의 정치의 산물이라 할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오해를 불식하고 참다운 민주주의 기초를 다지기위해 지방자치와 「동네 모임」을 다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투표에 즈음하여 지방자치와 민주화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지금까지 지방자치가 제대로 되지않은 나라중에서 민주주의가 잘된 나라가 있는가 하는 사실에 주목할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그러하고 오늘날 세계의 1백50여 국가중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잘되고 있는 나라로서 지방자치가 안된 나라는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방자치의 발달사는 곧 민주주의의 발달사이기도 하다.
○일꾼 선택과 판별의 기준
그동안의 선거과정을 지켜보았고 이제 투표를 하고자 나가는 마당에서 이런 사람은 괜찮고 「이러이러한 사람은 안된다」고 쉽게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깨끗한 한표로써 자신이 원하는 어느 한사람을 선택하는 행위는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자치제도의 정착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결코 뽑혀서는 안될 사람을 낙선시키는 행위도 되는 것이다. 당선과 낙선의 두 측면을 아울러 포괄하는 투표행위에서 그 선택과 판별의 기준이 중요한것도 이 때문이다.
후보자와 유권자는 모두 선거주체이다. 그리고 두 주체의 관계에 있어 구체적인 판별기준은 상대적인 것이라 할수 있다. 더구나 개개인의 직업·능력·자질뿐아니라 각지역의 특성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기초단위 지방의회선거는 중앙정치를 한 단위로 하는 대통령선거 또는 국회의원선거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예컨대 국회 전국구의원자리 가운데 상당수는 돈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자리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이 국회에서 제구실을 다하지 못함은 물론 자기의 이익보호에 앞장서다가 물의를 빚은 사례를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 다른 어느 분야보다 정치에 있어서 돈쓰는 사람은 반드시 쓴 만큼의 돈을,아니 그 이상을 벌충하기 위해 정치 아닌 다른 일을 꾸미는 사람이다. 이점만은 지방의원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돈 쓰는 사람은 절대로 안된다.
○깨끗한 한표 바로행사해야
이렇게 볼때 바람직한 지방의원 상은 대개 이러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역발전에 기여할 사람이어야 한다. 중앙무대에는 이미 지역주민의 또 한 대표로서의 국회의원이 진출해 있다. 기초의원은 어디까지나 동네살림꾼이어야 한다.
다음으로 지방의회의원은 청렴결백한 사람이어야 한다. 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돈쓸 힘이나 여유가 없거나 돈을 써보지 못한 사람이 동네 일꾼으로서는 보다 알맞다. 그런 사람만이 돈과 관계된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어떤 이권에 개재할 주변머리가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평범한 상식인이고 시정인이면서 「사람좋은 이웃」이어야 동네 일꾼이 될 수 있다.
또 지방의회와 그 의원들이 이른바 정치에 맛을 들여 중앙무대를 닮겠다고 정치성이나 권력성을 띠려한다면 지방의회존립의 목적과 의의는 이미 퇴색한 것이 된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조금이라고 관심을 갖고 지켜본 유권자라면 지방의원 하겠다고 나선 후보자들중 누구누구가 그런 「정치적 인물」이고 「돈에 관계될 인물」인가 알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차단하고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잘 가꾸고 키워가는 지혜
오늘 또다시 구태여 「풀뿌리」라는 표현을 들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지자제는 아래로부터 위로 오르는 민주주의 정치를 우리와 한몸으로 붙잡아 매놓는 정초과정이라는사실을 알면 된다. 그 기초가 흔들리면 기둥이 설 수 없고 대들보와 서까래와 기와가 오를수 없다.
유권자들이 모두 투표장에 가는 것만으로 다 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기초를 다진다는 경건한 마음가짐과 함께 여기에 장애가 되는 사람을 골라서 내친다는 날카로운 감시의 눈도 가져야 한다. 깨끗한 한표를 바르게 행사하자는 것이다.
1991-03-2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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