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만불똥”… 차분한 “자구비상”
수정 1991-01-16 00:00
입력 1991-01-16 00:00
폐르시아만에 전운이 점점 짙어지자 중동에 진출한 기업과 근로자 가족은 물론 온국민들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현지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운채 만일의 사태에 따른 대비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페르시아만에서 전쟁이 터졌을 경우 구입이 어려울지도 모를 석유나 양초,비상식량 등 생필품을 미리미리 준비하면서도 별다른 동요없이 생업에 종사하는 등 차분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3일 전부터 전쟁위기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때 차질을 빚었던 중동교민들과 근로자들의 철수문제가 원만히 해결돼 예정대로 16일 상오 귀국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불안감에 떨던 가족들과 회사측은 이들의 무사귀환에 안도하기도 했다.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군시한을 하루앞둔 15일 전국 각지의 주유소ㆍ시장ㆍ백화점 등에는 아침부터 평소보다 많은 시민들이 몰려 분주한 모습이었으며 직장과 가정에서는 시시각각 흘러나오는 페르시아만사태 보도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이날 수도권을 비롯,부산ㆍ청주ㆍ춘천 등 전국 대부분의 주유소에는 유가폭등을 우려한 시민들이 미리 기름을 사놓기 위해 차량뿐만 아니라 손수레ㆍ자전거ㆍ오토바이를 동원,기름을 나르기 바빴으며 이 때문에 재고가 바닥나기도 했다.
서울 도봉구 수유동 미륭상사 성북주유소에서는 하루전인 14일 하오9시쯤 난방용 등유가 모두 팔렸고 이어 『15일 하오3시부터 재공급한다』는 주유소측의 통보를 받은 주민들이 이날 새벽부터 기름을 사기위해 장사진을 이루며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시민 우옥분씨(59ㆍ수유1동 486의237)는 『14일 배달가게에 등유를 주문했으나 배달이 제대로 안돼 직접 사러 나왔다가 주유소마저 기름이 없어 5시간을 기다리다 겨우 10ℓ짜리 2통을 샀다』고 말했다.
14일 하오에는 서울의 면목주유소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50대 주민이 줄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종업원에게 항의하며 주먹다짐까지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석유 등 난방용기름의 수요폭발현상은 지방도 마찬가지여서 1백67곳의 유류판매 업소가 있는 청주의 경우 석유가 거의 동이나고 경유나 휘발유판매량도 2∼3배이상 늘어났다.
이처럼 석유공급난이 계속되자 유공ㆍ경인에너지ㆍ호남정유 등 석유업체들은 유조차량을 총동원,공급에 나서고 있으나 인천ㆍ경기도 과천 등의 저유소에는 석유를 공급받기 위한 유조차량들이 몰려 5시간정도 지나야 차례가 돌아가는 형편이어서 공급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밖에 상가 등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소형TV 등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세운상가에 라디오를 사러 나왔다는 김영욱씨(53ㆍ종로구 명륜동3가)는 『집밖에 나와서는 페르시아만사태와 관련한 소식을 알 수 없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전파상회에 들렀다』고 말했다.
석유가게나 전파상회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과는 달리 쌀이나 라면 등 주요 생필품을 파는 업소에는 평소와 다름없었을 만큼 당초 우려했던 사재기현상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중동사태와 관련해 가장 분주한 곳은 이 지역에 진출해 있는 대기업들.
이라크에 23명의근로자가 남아있는 현대건설은 종로구 계동 그룹사옥 6층 해외업무 본부사무실에 비상대책반(본부장 하오문전문ㆍ51)을 편성,24시간 철야근무에 들어갔다.
한편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주한이라크대사관은 가잘 바르한대사를 비롯,본국직원 6명과 한국인 직원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근무하고 있으나 입국비자를 신청하는 사람들은 물론 방문객도 거의 없어 전쟁을 앞둔 긴박감을 피부로 느끼게 하고 있다.
특히 페르시아만 사태이후 비자신청이 크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 1∼2일이면 가능했던 비자발급도 10여일이 넘도록 발급되지 않는 등 「전쟁분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다.
1991-01-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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