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선공존후통일」이 현실적”/소 학자「워싱턴회의」주제발표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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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5-22 00:00
입력 1990-05-22 00:00
◎평화공존 효과적 방법은 상호주권 인정/소의 대한접근,이념­외교 분리원칙 반영

다음은 소련 IMEMO(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의 한국 및 일본문제 전문가 게오르기 쿠나제가 지난주 미조지 워싱턴대 주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태평양에서의 소련의 신사고」라는 주제 논문 가운데 한반도대목을 발췌,요약한 것이다. 쿠나제는 이 발표에서 한소수교의 정당성을 강조한뒤 선남북한공존 후통일이 현실적이라며 한국측의 점진적통일방안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혀 고려연방제 아래의 즉각 통일을 주장한 북한측 참석자들과 논쟁을 벌였었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소련은 아직도 정치적 신사고의 개념을 정립 중이지만 그 기본원칙은 이미 확립돼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가 외교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원칙과 이해균형의 원칙이다.

태평양에서 신사고가 긍정적으로 전개된 대표적 예가 한소관계정상화 문제다. 소련의 대한접근은 이데올로기와 외교의 분리원칙이 정확히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련이 과거의 관행과 결별하기시작한 것은 최근인 1988년 가을부터다. 그 속도는 매우 빨랐고,이에 따라 소련과 한국은 40년이 걸릴 거리를 1년반만에 다달았다. 이같은 급진전의 토대는 무엇인가. 경제적 정치적 전략적 고려에서 볼 때 한국과의 의미있는 다목적 교류가 소련의 국가 이익에 합치된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국제법 상의 모든 기준에 비춰 볼 때 한국은 주권 국가로 인정되어야 한다. 한국은 독립성과 더불어 고도로 효율적인 경제 정치체제와 중앙 정부에 의해 전면 통제되는 국가영토를 갖고 있다. 주권 국가로서의 한국의 존재는 다른 국가가 승인하고 안하고 할 대상이 아니라 실존하는 현실 그 자체다.

또한 소련은 냉전을 주도했던 국가이기 때문에 최소한 냉전의 유산으로부터 세계를 해방시켜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갖고 있다.

소련은 이념적 편견으로 가득 찬 정책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에 동맹국의 개념에 대해서도 평가를 다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소­북한관계의 범주를 넘어서는 중요한 보편성의 문제다.

무엇이 동맹국에 대한 의무일까. 분명한 것은 어느 한쪽이 자신의 이익과 우선 순위를 무시하면서까지 다른 쪽의 정책 방향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관계는 동맹관계가 아니라 일방적 의존 관계라고 밖에 부를 수 없다. 오늘날의 동맹관계에서 동맹국에 대한 유일한 의무는 동맹국이 외부로부터 정당한 이유없이 침공을 받았을때 서로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밖의 다른 의무는 소련의 국가이익과 상충되지 않는 것만 이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련은 한국이 북한에 대해 무력분쟁을 도발하지 않는 한 전적으로 자유롭게 한국과 폭넓은 접촉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소련은 남북한 모두와 관계를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통일에 기여하리라고 확신한다.

통일이 된다고 남북한의 차이가 곧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은 즉각적인 행동보다는 참을성 있는 상호조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장기적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재조정 과정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은 남북한이 상대방을 주권 국가로서 상호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포괄적이고 실질적인 대화가 있을 수 없다. 남북한은 어떻게 통일을 이룩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할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 순서다. 공존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각기 주권독립 국가로서 공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가 옳다면 제3국들은 남북한 양국을 주권국가로서 확인하는 제도적 장치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한소 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광범한 국내 개혁과 근본적인 혁명은 상호 개방의 중요한 전제조건을 충족시켜 주고 있다. 두나라 사회는 민주주의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억압적인 정권간의 관계는 안정될 수도,신뢰할 수도 없다. 억압적인 정권 아래서는 인민의 의지가 쉽게 무시돼 결과적으로 대외정책의 노선 변화와 국제 의무의 배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소관계의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한국의 북방정책이다. 소련의 대한 개방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신사고에 의해 재사정 된 소련의 국가이익 때문에 추구된 것이지만 노태우대통령의 북방정책 추진과 맞아떨어져큰 실효를 거둘 수 있었다.
1990-05-2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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