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시위는 끝내야 한다(사설)
수정 1990-05-11 00:00
입력 1990-05-11 00:00
물론 느닷없는 일이 아니라 예고됐던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규모의 상황에 우리가 어떤 느낌을 받느냐에 있지는 않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번 시위를 조직하면서 전대협이 추구했던 소위대중성의 재확보가 혹시 성취됐다고 운동권학생들이 믿게되는 것이나 아닌가에 있다. 그동안 전대협은 동구권의 변화까지 겹쳐 실제로 마땅한 운동 이슈를 못찾아 왔고 이를 합당분쇄로 내걺으로써 대중성의 재기를 시도해 왔음은 공지된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이번에 들고 나온 이슈가 결코 공감 확대의 주제일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실 정치권의 문제이지 체제의 본질문제도 아니고 도덕적 정통성의 문제도 아니다. 학생시위가 여기에까지 매달리는 것은 오히려 오늘의 학생운동이 이제는 그저 타성적으로 운동을 유지해 가려는 악습에 젖어 있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또 오늘날 우리 젊은세대의 상상력이 너무나 비창조적이라는 데 절망감을 갖는다. 젊은이들의 주장이란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그것이 기성체제에 즉시 수용은 되지 않더라도 무엇인가 새관점과 감각을 일깨우고 기성이념이 다시한번 스스로를 반성케 한다는 데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전과 달리 이즈음의 행태는 기성체계의 답답함을 더욱 답답하게 하는 정체적 고루함까지 느끼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주장하는 바의 끝이 어떤 미래의 조망인가를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가 과연 이 새세대를 향해 이 나라의 내일을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인지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사태가 이런 식으로 더 계속된다면 우리는 최소한 치안질서에 있어서도 새로운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어느 시기에 있어서나 지켜야 할 질서마저 그동안 운동적 상황에 의해 많은 유예를 해오던 관습으로 확고히 하지못한 형태를 만들어 왔던 것이 또하나 우리의 병폐이다. 예컨대 화염병사용을 엄히 규제토록 법을 만들었으나 여전히 이 법의 준용은 많은 예외를 만들고 있다. 시위가 크면 클수록 이러한 시행형식은 더 기본적 질서와 사회적 약속들을 불투명하게 만들어 낸다. 따라서 우리는 지켜야 할 마땅한 질서규범들의 원칙들을 좀 더 선명히 다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기초 위에 정치적 시위의 격렬함과 폭력이 어떤 민주화도 이룩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 가야만 할 것이다.
정부가 재천명한 사회질서 확립에 대한 강력한 의지도 이제는 실제로 실천되는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이제 폭력시위는 끝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는 또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진지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1990-05-1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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